겨울로 가는 나무 한 그루 / 도종환


모두들 제 빛깔로 물드는 나무들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빛깔을 갖지 못해 괴로웠어요

이땅의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간 것들이

결국 강물을 이루어 흐르는 것을 보며

갈 길을 찾지 못한 우리는 답답했어요

또 한 해가 가고 있어요

언덕 위의 자작나무처럼 몸이 크고

하나의 과일이 가을까지 익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자라야 하는데

그물에 갇혀 발버둥치다 깨는 밤이 많았어요

선생님과 학교를 미워하며 떠난 친구들이 생각났어요

이제까지 나를 버티게 해준 나뭇잎들을

하나씩 떼어내며 생각해보면

늘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았어요

눈이 내릴 것 같은 잿빛 저 하늘에

아직도 군데군데 푸른 하늘 때문에 살지만

해가 바뀌면

우리는 또 어디로 떠나야 할지 불안해요

남의 길 남의 빛깔이 아닌

누가 조금만 더 일찍 내 몸에 맞는

내 빛깔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

우리들의 젊은날은 더 풍요로웠을 거예요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결국은 하나씩의 작은 길을 가는 것이라고

조금만 더 일찍 가르쳐주었다면

오늘보다 좀더 아름다운 길을 걸어왔을 거예요

이제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겨울로 가는 시간이 안타까워요

안녕. 뜨겁던 여름과 쓸쓸한 가을을

함께했던 벗들이여

한 개씩의 낙엽이 되어 이 세상의 한 모퉁이로

뿔뿔이 흩어져갈 벗들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