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봄날/임영조


얼마 전, 섬진강에서
가장 이쁜 매화년을 몰래 꼬드겨서
둘이 야반도주를 하였는데요.

그 소문이
매화골 일대에
쫘악 퍼졌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도심의 공원에 산책을 나갔더니,


거기에 있던 꽃들이 나를 보더니만
와르르- 웃어젖히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요.

거기다 본처같은 목년(목련!)이
잔뜩 부은 얼굴로 달려와
기세 등등하게 넓다란 꽃잎을
귀싸대기 때리듯 날려대지요,

옆에 있는 산수유년은
말리지도 않고 재잘대기만 하는 폼이
꼭 시어머니 편드는
시누이년 같아서 얄밉기만 하고요,

개나리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꼼지락거리며
호기심어린 싹눈을 내미는데요,

아이고,
수다스런 고 년들의 입심이 이제
꽃가루로 사방천지에 삐라처럼 날리는데요,
이 대책없는 봄을 어찌 해야겠습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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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는 봄/임영조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엔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뻗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 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것은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락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없이 멋대로 발랑까진 십대들
냉이 꽃다지 제비꽃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뱃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 없는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