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李相潤


옷을 입는다
십 년이 넘게 입어 온 옷 하나를
오늘도 거울 앞에서 새 옷처럼
다시 입는다

낡고 작아져서 이제는
어려운 이들에게도 차마 줄 수 없는 옷이지만
내가 어린애처럼 옷을 입을 때마다
황사 같은 아내의 입술에 돋아나는
봄풀의 향기

인제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만나지도 못할 우리들의 시간이
여기 말없이 버려도 좋을
가난한 옷 하나에
이렇듯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가

옷을 입을 적마다
가슴을 적시는 낮달 하나가
꽃잎처럼 봄 바다를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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