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한 친구가 어디에서 들었
는지 전주에 있는 성모병원에 가면 피를 팔 수 있는데 한번에 8,00
0원을 준다며 용돈도 없고 하니까 언제 한번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때당시 돈으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 기차를
타고 전주에 같이 갈 친구들을 모집했다.


그 결과 5명이 같이 가기로 하여 날을 잡아 교통비가 적게 드는 완
행열차를 타고 가기로 하고 아침 9시 이전에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고 해서 새벽에 자취방에서 일어나 아침 6시 40분경 남원역에 도착
하여 기차바퀴 옆 스팀장치에서 모락모락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
을 보면서 새벽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서 친구들을 만나 완행열차
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전주역에서 물어 물서 병원을 찾아가니 벌써 병원 앞에는 몇몇 사람
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얼마나 자주 그곳을
찾아 다녔는지 얼굴이 아주 창백하게 하얀 사람도 두명쯤 보였다.
아침 8시 30분이 조금 지나자 그날 필요한 매혈 할 혈액형을 병원
현관옆 벽에 혈액형을 써 붙이는데 보니까 O형만 달랑 붙이는 것이
었다. 아뿔사! 나는 B형이었는데 용돈을 제법 잘 쓰겠다는 희망이
순간적으로 확사라져 버렸다. 같이 간 친구들 중 1명이 O형이 있어
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같이 간 사람들 모두 용돈이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내려올 때 교통비는 거의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갔기 때문이다.


O형의 친구가 병원으로 들어가 한참동안 있다가 밖으로 나오자 우
리 일행들은 그 친구를 따라서 전동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침밥도 안 먹고 배도 고팠지만 매혈을 하고 나온 친구한테 뭣을
사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당장 타고가야 할 버스요금도 없었기에...
O형의 친구가 버스표를 모두 끊어 버스를 타고 올 때의 우리 일행
들의 모습은 마치 패잔병 같기도 했다.ㅎㅎ


남원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역전에서 가까운 포
장마차로 가서 O형의 친구가 삶은 계란 1 개씩을 사주어 오뎅국물
한 컵 마시고 헤어져야만 했다. 가난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또 하나
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새벽기차를 타고 갔던 용기가 어디로 사라져 그런 일이 있
은 후 지금까지 헌혈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던 내가 어제 오후에는
직장에 찾아 온 헌혈차량에 올라가 당당하게 난생 처음 즐거운 마
음으로 헌혈을 했다. 헌혈을 하던 중 잠깐 빈혈증세대 나타나는 현
상처럼 잠시 눈에서 불빛이 아롱아롱 하기도 했지만 헌혈을 하려다
몸이 약해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니 나는 행복한 사람
이었다.


퇴근을 하여 집에 도착하여 기념품으로 준 스포츠 타올을 거실 바닥
에 놓으면서 집사람한테 “나 오늘 헌혈 했어.”하고 말하자 곧바로
“그러면 계란 후라이 2개 해줘야 하겠네.” 하는 것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양보충 하는 데는 계란이 제일인가 보다.ㅎㅎ
세상은  조그마한 힘을 모으고 모으면 더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명한데 거기에 내가  작은 사랑을 실천 할 수 있어서 기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