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春香)/김영랑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 하였음을 알았었느니라
오! 일편단심.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설움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의 외론 혼을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단심.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 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道)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콤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려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을 새우다가 그는 고만 단장(團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

깊은 겨울밤 비바람은 우루루
피칠해논 옥창(獄窓) 살을 드리치는데
옥죽음한 원귀(寃鬼)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청절(淸節) 춘향도 호을 잃고 몸을 버려 버렸다.
밤 새도록 까물어 치고
해 돋을 녘 깨어나다
오! 일편단심.

믿고 바라고 눈 아프게 보고 싶던 도련님이
죽기 전에 와 주셨다 춘향은 살었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된 춘향이 보고
이도령은 잔인스레 웃었다 저 때문에 정절이
자랑스러워
「우리집이 팍 망해서 상거지가 되었지야」
틀림없는 도련님 춘향은 원망도 안했니라
오! 일편단심.

모진 춘향이 그밤 새벽에 또 까물어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둔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 뵈어 한을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주 끊기고
출도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보다 잔인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