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정호승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