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사과를 위하여 / 천종숙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어린 나무에게
날마다 해가 머무르다 가곤 했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침 뚝 떼고 서 있는 나무가
아무래도 수상쩍었습니다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성숙해갔습니다
반질반질 화색이 도는 이파리
도톰하게 물이 오른 장딴지
사랑에 빠진 게 분명했습니다
아무튼 모른 척 하기로 했습니다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그들의 애정 행각은
작은 나무가 휘어지도록 드러났습니다
수나귀와 암말이 만나면 노새가 태어나듯이
해와 나무가 만나 한 알의 사과를 맺은 것 입니다
해를 꼭 빼닮은 열매들은
아기 볼처럼 탐스러웠습니다
해와 나무의 뜨거운 사랑을
한 입 스윽 베어 문 날 밤
나는 한 알의 사과처럼
그에게 스미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