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제 103

    나의 숲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바람의 속삭임을 저만치 늙은 소나무 정령(精靈)의 언어로 노래 한다 허리 저리도록 무거웠던 짐이나 슬픔이니, 아픔이니 하는 것들을 돌아보는 여유도 주어 지나간 시간은 아름다웠다고 미소를 띠게도 한다 삶의 원동력인 사랑에 대하여도 환희(歡喜)를 쓰러뜨리도록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소용돌이 치고 나서야 고독(孤獨)도, 실연(失戀)도 한 몸에서 낳은 분신임을 묵묵히 바르게 참아내는 자 만이 값진 인생이라 늘 속삭인다 이 지금, 눈을 감으면 사랑은 아득히 아지랑이 따라 저 언덕을 올라오고 온 숲이 몸살 나게 폭풍우를 뿌리고 앙칼진 햇살에 하나 둘 낙엽으로 떠나가고 황량한 소롯 길 사이로 겨울이 기웃거릴 때쯤 사느라 덕지덕지 낀 이끼와 더불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무채색의 응어리들을 꺼내어 달 없는 한밤중에만 조용히 묻도록, 나를 불러 내었다 이제야, 생(生)이 끝나면 차디찬 땅속으로 돌아가 누워야 된다는 두려움이나 안타까움에서 마음이 놓이고 내 것은 감추고 받으려하고, 앗으려고만 하며 살아 온 게 아닐까 두렵고도 두렵운 시간으로 얼게하여 늦었어도 보시(布施)와 배려(配慮)가 비슷하여 보여도 "마땅히..."와 "그러하다면..." 처럼 상이(相異)한 수평(水平)과 수직(垂直)의 의미임을 깨우쳐 주었다 흐린 눈이어도 환히 나갈 수 있도록 비춰 준 나의 숲 오늘도 맑은 바람으로 불러주는 정령의 노래에 나를 씻는다 0701. 邨 夫 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