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딜레마

 

 
 

“너 때문에 동생 귄터가 죽었어.” 등산계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가 1970년 히말라야에서 혼자 돌아오자 아버지와 동료들은 냉대했다. 그는 “아우가 눈사태로 죽었다”고 했을 뿐 변명하지 않았다. 묵묵히 산에만 올랐다. 1986년까지 최초로 히말라야 14봉을 모두 정복했다.
 
그는 작년 낭가파르바트봉을 뒤져 눈 속에서 시신을 찾아냈다. 발가락뼈를 가져와 DNA 검사를 했다. 귄터의 것이었다. 그는 35년 ‘멍에’를 비로소 벗었다.
 

▶메스너는 자서전 ‘벌거벗은 산’에서 아우의 마지막 순간을 돌이켰다. ‘하산 길에 우박과 돌풍이 몰아쳤다. 모든 감각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텐트도 없이 야영했다. 동생은 자꾸 처졌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우가 없었다. 미친 듯 울부짖으며 온밤을 찾아다녔다.’ 죄의식이 그를 내내 괴롭혔다. ‘귄터의 꿈을 꾸고 또 꾸었다. 그렇게 해서 귄터를 붙들어두려 했다.’

▶한왕용은 히말라야 14봉을 모두 오른 한국인 세 명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00년 히말라야 K2봉 등반 길에 고통을 호소하는 선배에게 산소 장비를 넘겨주고도 정상에 올랐다. 그 후유증으로 뇌혈관이 막히는 바람에 네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말도 어눌해졌다. 그는 정상 정복을 코앞에 두고도 조난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1995년엔 에베레스트 정상 100m 못 미쳐, 1998년엔 안나푸르나 490m 아래에서 다른 산악인을 구조했다.

▶두 다리가 없는 뉴질랜드 장애인 잉글리스가 보름 전 에베레스트에 오른 뒤 “하산 때 죽어가는 사람을 만났지만 도와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날 정상을 오르내린 40여 명도 그냥 지나쳤다. 반면 지난 주말 동료들이 죽은 줄 알고 에베레스트 150m 아래에 두고 온 호주 산악인은 등정을 포기한 미국인에게 구조됐다. 이 두 사건으로 8000m 이상 ‘죽음의 지대(death zone)’에서의 구조를 둘러싼 윤리논란이 한창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죽음의 지대에선 산소가 평지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신체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의식이 흐려진다. 혹한·폭설에 탈진까지 겹치면 끝이다. 잉글리스도 “남의 목숨은 고사하고 내 목숨 건지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힐러리 경은 후배들을 질타했다. “정말 중요한 건 정복이 아니라 생명이다.” 죽음의 지대는 신의 영역이라지만 사람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주용중 논설위원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히말라야 용 사진

 

* 오작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7-05 0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