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대표들이 28일 가즈니의 국제적십자사에서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국 정부 협상대표, 카리 바시르, 물라 나스룰라. 가즈니/AP 연합

- 인질석방 막전막후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들을 붙잡고 있던 41일간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극적 타결을 이끈 협상의 막전막후에는 피랍자 안전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은 ‘비화’들이 있다.

- 초기 석방 노력 실패

=지난달 19일 한국인 23명이 납치된 지 6일 만에 ‘인질 8명 우선 석방’이라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정부는 피랍자 석방 조건을 놓고 현지 원로들의 중재로 비밀리에 협상을 나섰다. 정부는 당시 납치세력이 강경파 1개 분파, 온건파 2개 분파로 나뉜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달 25일 그러나 이날 8명을 풀어주려고 산에서 데리고 내려오던 탈레반 대원들은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이 직후 배형규 목사가 살해됐다. 탈레반이 미군 장갑차를 보고 겁을 먹어 석방을 취소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곧 탈레반 강경파가 온건파의 시도를 알아채고 제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는 이때 온건파로 분류되는 탈레반 지방조직 쪽을 우선 설득 대상으로 삼아 가즈니주 지역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은 ‘탈레반 수감자-인질 동수 교환’이라는 요구를 더욱 강조하면서 하루 단위로 ‘처형 시한’을 연장해 가며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했다.

사태 초기, 아프간 정부는 실제로 군사작전을 준비해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아프간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말리지 않았다면 구출작전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교착 국면…두번째 희생

=배 목사 피살 직후 한국 정부는 부랴부랴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대통령 특사로 아프간에 파견해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한테 인질-수감자 교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물론 미국도 이에 난색을 나타내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협박의 강도를 높여가던 탈레반은 급기야 31일 심성민씨를 추가로 살해했다.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오자, 청와대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창조적 대안’을 가지고 피랍자 구출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노 대통령이 말한 창조적 대안에는 군사작전까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거푸 피랍자들이 살해되자, 정부 안에 강경 기류가 거세졌다는 것이다.

정부 협상단은 ‘한국 여론 때문에 군사작전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며 탈레반을 압박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심성민씨가 살해되자 직접 국제사회를 상대로 호소하겠다는 뜻을 보였지만, 주변에서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 아프간 정부가 이탈리아 기자 1명 석방 대가로 탈레반 고위급 5명을 풀어주고도, 한국인 석방협상에는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런 처사에 “자존심 상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달 3일부터 탈레반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 등은 “인질을 당장 살해하지 않겠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추가 살해는 없다”며 한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마침내 10일 탈레반과 한국 협상단의 첫 대면협상이 열렸다. 한국 쪽은 “인질-수감자 교환은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면서도 아프간 정부를 상대로 인질 교환 가능성을 계속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 쪽에서 “협상이 60~70% 진척을 보고 있다”는 희망적인 말이 나왔다.


- 극적 타결

 

=지난 13일 탈레반이 “인도주의”를 내세워 김경자·김지나씨를 풀어주면서, 협상 분위기는 확실히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특히 25일 <아프간이슬람통신>이 남은 인질 19명 전원의 석방에 합의했다고 보도하면서, 협상은 이때 이미 타결된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사령관 압둘라는 26일 <한겨레>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미 전화로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28일 대면협상이 이뤄진다면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한국 협상단은 협상이 사실상 타결된 상태에서 25~26일 피랍자들과 전화 및 서면으로 신원과 안전 여부, 소재를 파악했다.

 

이본영 이제훈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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