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ompy.dreamwiz.com/lkd2004잘 놀아야 잘 산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차르트는 병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몰래 빠져나가 창녀들과 노닥거린다. 그 노는 모습은 재미를 쫓아 논다기보다는 마지막 생명력이나마 일깨워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다.

모차르트의 창조성은 무의식에 대한 열림, 자유로움에서 나온 듯하다. 내 안의 큰 힘과 만났을 때 공부도 잘하고 창조적인 나아감도 가능하리라. 따라서 내 안의 큰 힘을 지닌 무의식과 감성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창의적인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내 안의 큰 힘을 지닌 무의식의 에너지인 지혜와 총명을 해방하는 길이 적절히 노는 것이다. 노는 것에도 질이 있다. 어떤 것을 해방하기 위하여 노는 쉼의 시간과 그냥 시간을 죽이기 위하여 노는 방탕의 시간이 있다. 쉼의 시간은 문학과 태극권이나 스포츠나 여행 등을 통하여 지적이고 감정적이고 의지적이고 영적인 것의 정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방탕의 시간은 노름과 술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쉼의 시간은 우리를 정화하여 새로운 창의적인 것을 가능케 하고, 방탕의 시간은 육신과 정신과 영을 피곤하게 하여 중독에 빠지게 한다.

뭔가를 구하려고 바깥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힘써 노력하지만 많은 현대인의 삶은 목적지를 상실했다. 휴식도 없이 그냥 바쁘기만 한 삶이기에 쉬 병든다. 유치원 때부터 공부에만 시달리다가 청춘을 다 보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컴퓨터, 영어, 피아노, 그림, 태권도 등을 배우라는 엄마들의 극성 때문에 아이들은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 노는 것이 정화하는 시간임을 모른다.

공부만 하는 것이 삶이 아니다. 그런 삶은 삶이 아니다. 그렇게 공부하면 머리에 든 것은 많겠지만 정말 삶에 필요한 용기나 지혜나 총명은 생기질 않는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세계에서 제일 똑똑하지만 그것은 모방의 능력일 뿐, 자생력과 창조력은 불쌍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

과외도 물론 해야 한다. 그러나 과외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방학을 이용하여 외국 배낭여행을 보내주거나 산사에 들어가 선을 체험하거나 수련원 같은 곳에 가서 훈련을 받는 것도 바람직하다. 스스로 움직이고 묻는 가운데서 자생력과 창의력이 생기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교실 안에서 배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삶의 깨달음이다.

잘 뛰어놀고 모험을 해보아야 싱싱하게 사는 법을 터득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공부만 잘하면 자식이 커서 잘 살 줄 생각하지만 잘 노는 것이 생명을 키워준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졸업하면, 직장에 들어가서 평생을 아등바등 헤맨다. 왜냐하면 지식은 있지만 지혜가 없고 쉬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

공부만 한 사람은 삶의 목적이 뭔지 또 어떻게 휴식하는지도 모르고 바쁘게 돌아다니기만 한다. 이런 바쁜 도시적 삶에서 돌아와 ‘내가 무었을 얻었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없다. 공부하고 일하는 것만큼 푹 쉬고 노는 것이 삶을 누리는 것이다. 쉼의 시간이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다.

‘잘 노는 사람이 공부도 잘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우리 부모들이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눈앞의 성적 올리기에 너무 조급하기 때문이 아닐까? 대개 조급하면 무슨  일이든 망치기가 쉽다. 조급하면 되는 일이 없다. 아니 될 일도 안 된다.

쉼을 통한 충전 없이 공부만 하거나 일만 하면 창의력이나 자생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그게 오히려 삶의 점수를 깎아 먹는 것이 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인 우리들까지도 적절한 일과 공부와 쉼이 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