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리운 내 고향    <東山 홍영수>
     
     
    내가 태어나서 자란곳, 뛰 놀던곳, 내 정서를 길러준 내 고향;
산골의 아늑하고 자그마한 그 마을은
나의 정신적 고향이며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60년 가까운 타향살이로
나의 고향은 까마득히 먼곳으로 느껴 지기도 하지만,
금새라도 잡힐 듯 눈앞에 다가오기도한다.

대구 북녘 팔공산 기슭,
산골 마을에서 티없이 놀던 어린 시절이 눈물 겹도록 그리운 것은 나만의 감상일까?
나이가 들면 감정도 무뎌진다는데, 타향도 정 붙이면 고향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고향이 그립고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울리는 것같으니 어이하랴!
새들이 어두워지면 귀소 본능이 있는 것처럼,
인간도 고향을 그리워 하는 것은 본능일 것이다.


어린시절, 내가 살던 고향풍경은 가장 한국적인 모습이었다.
승용차는 말할것도 없고, 버스 한대다니지 않는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봄이 오면 진달래가 만발했다. 앞산에도 뒷산에도 진달래가 피었다.
하다못해 마을 귀퉁이에도 피었다. 허기진배를 채우려고 진달래꽃을 따먹기도 했다.
"참꽃"이라 불리는 진달래꽃은 쌉싸래하지만 향긋한맛도 있었다.

짙은 녹음이 우거지는 6,7월은  먹거리가 제법 풍성해지는 계절이다.
밀밭서리, 감자서리, 참외서리가  즐거운 계절이다.
주인몰래 밀을베어 구석진곳에 불을 지펴놓고 구워먹는재미, 먹는것도 경쟁이라
정신없이 주워먹다보면 얼굴에 검정이묻어 새까맣게 되었어도 즐겁기만했다.
 
소에게 풀을 먹이려고  산에 갈때면 으례 감자묻이를 하게마련이다.
몇놈이 감자 서리를 해오는 사이 남은 녀석들은
구덩이를 파고 땔나무 꼬챙이를 주워 구덩이 속에 넣고 ,
그 위에 자갈을 쌓아올려놓은다음 불을지펴 자갈을  달군다.
나무 꼬챙이가 다 타면 쌓아 올린 자갈을 무너뜨리고
가운데를 헤집어 놓고 감자를 그속에 묻는다.
그래서 "감자묻이"라고 한다.


그런데... 감자묻이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달군 자갈속에 감자를 묻어 두기만 하면 잘 익지않는다.
그래서 감자를 묻어놓고 흙으로 덮은 다음
옹달샘에 가서 고무신을 벗어 물을 길러와
감자묻이 꼭대기를 조금열어 물을부어 흙으로 다시 덮으면
뜨겁게 달은열이 발산하기 때문에
감자가 잘 익을뿐 아니라 그 맛이 기가차다.
그러나 주변에 물이없으면 비상수단을 동원한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물이 없어도 방법은 있었다.
용기있는 녀석이 사타구니를 열고 소방호스로 물을 뿜어대니 만사가 해결되었다.
아무도 지린내 난다는 소리않고 잘도 먹었더라.


야트막한 산자락이나 개울가 모래밭에는 여기도 참외밭, 저기도 참외밭이다. 
한여름밤,원두막에서망보는 주인몰래 도둑고양이처럼 숨을죽이고
기어가 따먹던 참외는 꿀맛이었다.,
사과서리, 콩서리, 곶감서리 등등 별의별 서리를 다했는데,
주인한테 걸려도 "그러면 안되"하는 꾸중 한마디뿐, 심하게 야단 치는법도 없었다.

개울에서,도랑에서 피라미 잡고 가재 잡고,
무논에서 미꾸라지 잡고, 황금 들판에서 메뚜기 잡아
구워먹고 지져먹고 볶아먹었다.
그뿐인가...신문지나 공책을 뜯어 만든 딱지 치기, 구슬치기
연날리기,자치기 등으로 해저무는줄 모르고 뛰놀던 내고향,
그곳에서 그렇게 살던때가 있었다.


이제 七旬나이가 되어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품과같은 고향이있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어린시절의 추억이있다.
가난했지만 넉넉했던 추억들이 내 마음속에서 따뜻하게 닥아온다.
고향은 내마음을 淨化시키고 내영혼을 정화시키는 곳이다.
수수백년 내조상들이 살아온곳, 내가묻힐곳,
지금도살고있을 친지와 친구들.... 이런것들을 생각하면서 고향하늘을 처다본다.

해맑은달은 언제나 고향에서뜬다.
 
고향이 있는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자. 자식과 손자들에게 고향의 의미를 가르치자.
명절이오면 길거리에서 귀성전쟁을 치르더라도 찾아갈 고향이있어 행복하고,
그곳에 응석부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있어 행복하다는것을 가르치자.
고향에가서 그들의몸속에  조상의피가 흐름을 느끼게하자.
이렇게하여 그들의정서가 살찌게될것이고 사회생활에 활력소가  될것이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