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병(酎甁)과의 대작(對酌) 
    
    
    
      술아, 널 찾는 가슴 속을 보았느냐 부모님 돌아가셔야 불효(不孝)를 깨우친 이도 찾더냐 자식(子息)을, 가슴에 묻은 이도 있더냐 세상살이 휘어버린 등 펴느라 찾는 이는 없더냐 사랑에 목메어 아직, 더 큰 세상 모르는 철부지는 어떻드냐 그렇구나 수연(壽宴)에 올리는, 며느리의 고운 마음도 보았겠구나 장(壯) 한 후손(後孫) 가문(家門) 떨쳐, 딸아주는 도타운 情도 보았겠구나 희생(犧牲)과 봉사(奉仕)로 위로(慰勞)하며 아픈 가슴 달래어 주는 부처의 마음도 보았겠구나 그런데 오늘은 너를 찾는 구실 하나 또 생겼다 십 수년(十數年) 내내 명치 맞아 내 지르는 소리 아니다 이젠, '억'소리도 잦아들어 입만 뻐끔이게 하는, 너 아닌 다른 병(病)에 취(醉)하여 있는 蟲들이 갈증(渴症)을 부르는구나 急한대로 만만한 너 부터 면전(面前)에서 따져 보자 너 술병(酎甁)아 듣거라 취(醉)하게 하는 너는 늘, 서 있는데 너에게서 겨우 잔(盞)술 동냥이나 한다고 나만, 쓰러뜨리는게냐 世上이, 이렇게 不公平 하여도 되는거냐 그 또한 그렇구나 너는 늘 醉해 있어도 아니 醉하여 보이는 화장(化粧)이 있구나 나는 간장종지만 해서, 盞 술 몇방울에도 가난하게 醉하는 거구나 그래도 그렇지 화장(化粧) 아니하고, 맨 얼굴로 같이 醉하면 아니되는 것이냐 돈 中毒에 醉한 蟲이던, 權力에 醉하여 中毒된 蟲이던...... 네가 보고 싶어 마신다더냐, 네가 그리워 마신다더냐 그런데 오늘 내가 술 칠 때는, 대작(對酌)해 줄, 입(口)들도 없구나 잔(盞) 권(勸)할 이 없는 일도 속이 상(傷)하는구나 이잔(盞)을 받아라, 정(情)으로 채운 잔(盞)이란다 너, 나, 속바지 꿰매입은 줄 다아는 사이 아니드냐 단숨에 들이켜다오, 그래서 나에게도 권(勸)해다오 안주(按酎)꺼리는, 내 시름 먹여주마, 너의 시름은 나를 다오 다시, 이 盞 만 받아다오 마지막 잔이다 뒷 탈 없는 '正'으로 채운 盞이란다 아니다, 이 盞 들면 '王' 되는 盞이란다 온 世上이 내 것이니, 걱정할게 없더구나 너도 王이 되어보거라! 이밤아! 世上이 다 醉하고 아침 오면 술 깨듯이 世上아, 너도 맑아 이슬로 깨어나다오! 05. 동짓달 邨夫 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