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한 마누라가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 투정 부릴때는 돌아가신지 어머님과 비교되곤 한다. 뉘집도 다 그랬겠지만 일곱형제를 길러내신 어머님이기 때문이다. 아홉식구 밥해 먹이는데 당시엔 연탄이 있었나 가스렌지가 있었나 전기밥솥이 있었나 그저 땔감 아궁이불로 밥을짓고 국을 끓이셨다. 땔감이 없으면 낫과 갈퀴를 들고 산에도 가셨다 민둥산에 무슨 긁을 소나무 잎이 있으랴! 빨래를 한다치면 그 추운 겨울에 냇가에 가서 빨아 오신 모습을 예사롭게 보고 자랐다. 우리 장모님은 지금도 세탁기와, 청소기, 그리고 고무장갑 만든분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지치고 힘들때는 그 연약한 어머니의 힘찬 삶의 모습을 생각하며 재충전 할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머님은 우리에게 위기관리능력을 주셨다. 어머니날 즈음도 아닌데 웬 어머니 얘기? 그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어언 15년! 제사 모시러 시골 가는길에 차창너머로 이른봄의 들녁을 응시하며 네째아들이 잠시 어머님 생각에 잠겨봤다 (나의 글)
        ♬ 어머니 - 박건 ♬ 마음 하나 편할 때는 가끔씩은 잊었다가 괴롭고 서러울 때 생각나는 어머니 젖줄 떠나 자란 키는 당신보다 크지만 지금도 내 마음엔 그 팔벼개 그립니다 지난 여름 정든 고향 개울가에서 어머님을 등에 업고 징검다리 건널 때 너무나도 가벼워서 서러웠던 내 마음 아직도 나는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팔벼개 의지하신 야윈 얼굴에 야속하게 흘러버린 그 세월이 무정해 어머님이 아실까봐 소리없이 울었네 아직도 그 한 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