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술 중에서 와인과 맥주를 가장 좋아한다. 물론 청탁불문 전부 즐겨 마시지만 이 2종류를 제일 선호한다는 얘기다. 소주는 가장 싫어하면서도 실은 가장 자주 많이 마신다. 위스키는 그저 그렇고 오히려 중국산 독주를 즐기는 편이다. 와인은 오랫동안 매일 마시다 보니 이제는 좋아하는 와인을 선택해서 마시는 게 아니라 아예 덕용으로 사다 놓고 마신다. 귀차니즘에 빠져서 귀차니스트가 되버렸다. 

 

와이셔츠 속 등 위로 땀이 줄줄 흐르는 한 여름 오후쯤 되면 시원한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맥주의 70%가 6월에서 10월 사이에 팔린다니, 여름과 맥주는 역시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인가 보다. 아직 5월이지만 낮이면 꽤 덥다. 맥주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그런데 덥다고 회사 근처 아무 술집으로나 달려가 “맥주 한잔” 외친다면 동문은 ‘구닥다리’다. 요즘 유행 좀 안다는 사람들은 ‘나만의 스타~일’에 맞는 맥주 한 가지쯤 갖고 있다. 미국산 밀러, 멕시코 코로나 등이 그동안 ‘스타일리한 맥주’의 대표주자였다면 최근에는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 개성 강한 유럽산 맥주가 강세다. 해외 여행객이 늘면서 독일 ‘옥토버 페스트’의 천막 안에서 맛봤던 그 맥주, 발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들이켰던 그 맥주 한 모금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 덕에 라거 일색이던 맥주 시장에 흑맥주, 밀맥주, 당분을 뺀 라이트 맥주까지 입맛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맥주가 선을 보이고 있는 추세다.

맥주가 그게 그거 아니냐고? 이거저거 따지기 복잡하다고? . 천만의 말씀. 나에게 꼭 맞는 ‘나만의 맥주 한 잔’을 즐겨보자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가 있다. ‘팝의 황제’, 그 마이클 말고 ‘비어 헌터(Beer Hunter)’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맥주계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다. 영국 출신인 그는 1977년 『세계 맥주 가이드(The World Guide To Beer)』라는 책을 펴내 1만여 종이 넘는다는 전 세계의 맥주를 사십여 가지 카테고리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맥주란 크게 상면 발효맥주(에일·ale), 하면 발효맥주(라거·lager)로 나뉜다. 세계 맥주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라거는 밑으로 가라앉는 효모를 이용해 7~15도 정도의 저온에서 발효시킨 맥주다. 단맛이 나고 도수가 비교적 낮다는 게 특징. 필젠(pilzen), 보크(Bock) 등의 맥주도 라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국내에서 생산되는 OB, 카스, 하이트 등도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와 달리 상면 발효맥주 에일은 영국에서 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발효 중 표면에 떠오른 상면 발효 효모를 사용해 18~25도 정도의 비교적 고온에서 발효시킨 것. 거품이 적고 호프의 냄새가 강하며 쓴맛도 강하다. 밀을 첨가해 만든 휘트비어(Wheat Beer), 스타우트(Stout), 포터(poter), 람빅(rambic) 등이 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마이클 잭슨은 이 두 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맥주가 생겨난 지역과 색깔, 도수 등을 기준으로 해 골든 비어, 다크 라거, 골든 에일 등 각 맥주의 스타일을 분류했다. 맥주를 마시기 위해 이런저런 스타일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조금만 알아두면 나의 취향과 입맛에 맞는 맥주를 선택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밍밍한 맥주는 싫다. 강하고 묵직한 맛을 찾는 사람

흔히 이런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흑맥주다. 흑맥주란 맥주의 원료인 보리맥아를 까맣게 태워 어두운 빛깔로 양조한 것으로 맛도 일반맥주에 비해 진하다. 에일 방식으로도, 라거 방식으로도 흑맥주를 만들 수 있으며 아일랜드의 기네스(Guinness) 스타우트가 가장 유명하다. 독일의 벡스 다크(Becks Dark), 호주의 쿠퍼스(Coopers) 스타우트, 한국 맥주 스타우트처럼 이름에 ‘다크’나 ‘스타우트’가 붙으면 흑맥주로 보면 된다.

흑맥주가 너무 강하다면 그보다는 조금 덜 쓴 에일에 도전해 보자. 뉴캐슬브라운 에일(Newcasle Brown Ale · 사진)은 걸쭉하면서도 단맛과 쓴맛의 조화가 잘 이뤄져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라거류 중에는 독일 크롬바커 필스(Krombacher Pils)나 벨기에의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등이 한국 맥주보다는 쌉쌀한 맛이 강하다.


취하지 않고 배만 부르다,‘센 맥주’ 어디 없나?

보통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4~5도. 하지만 라거 맥주의 일종인 보크 비어(Bock Beer)는 알코올 도수가 7~9도 정도로 높고 맥아가 많이 함유된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맥주로는 에딩거 보크(Erdinger Bock), 파울라너 살바토르(Paulaner Salvator) 등이 있다. 파울라너 살바토르는 과거 독일 파울라너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단식 기간 중 ‘액체 빵’으로 먹었다는 걸쭉한 맥주다.

과거 벨기에 수도원에서 시작된 레페(Leffe · 사진) 시리즈도 단맛은 적고 자극적인 쓴맛이 강한 것이 특징. 레페 블롱드(Blond)는 6.3도, 레페 브라운(Brune)은 6.5도로 도수가 꽤 높다. 국산은 카스 레드가 6.9도로 가장 도수가 높다.


쓴맛을 싫어하는 여성을 위한 달콤한 풍미의 맥주?

국내에서도 최근 뜨고 있는 벨기에 맥주 호가든(Hoegaarden)은 밀을 사용한 휘트 비어(Wheat Beer)로 밀맥주 특유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귤껍질과 향료를 사용해 상큼한 과일향을 첨가했다. 독일의 밀맥주 바이젠의 종류인 에딩거 둔켈(Erdinger Weissbier Dunkel)은 초콜릿향이 나며, 에딩거 헤페(Erdinger Weissbier Hefe)는 과일향이 나 맥주의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즐기기에 좋다.

음료처럼 가볍게 즐기는 알코팝(Alcopop) 스타일 맥주도 괜찮다. 후치(Hooch), 케이지비(KGB), 크루저(Cruiser), 우디스(Woody’s · 사진) 등은 맥주나 보드카에 천연 과일 등을 결합해 만든 가벼운 음료들. 머드셰이크(Mudshake)는 보드카와 부드러운 우유를 베이스로 초콜릿, 캐러멜, 커피가 첨가돼 아주 쉽게 넘어간다. 달콤한 맛과는 달리 알코올 도수가 5도 정도로 낮지 않은 편이라, 남자들의 ‘작업주’로도 종종 이용된다.


맥주를 마시면 배가 나온다는데, 다이어트용 맥주?

맥주는 곡물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열량이 꽤 되지만(L당 400kcal 정도) 다른 탄수화물 칼로리와는 달리 혈액순환 촉진이나 체온 유지에 이용되기 때문에 체내에 축적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호프의 쓴맛이 식욕을 촉진해 과식하게 만드는 것.

일본에서는 다이어트를 걱정하는 사람을 위한 ‘발포주’가 인기다. 발포주란 맥주와 거의 동일한 맛을 내지만 맥아 비율이 25%가 넘지 않는 맥주. 아사히 맥주가 내놓은 스타일 프리, 기린의 제로, 산토리의 제로나마 등이 대표적인 다이어트용 맥주지만 한국에는 아직 정식 수입되지 않는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미국 맥주 밀러 라이트처럼 라벨에 ‘라이트’가 붙은 것을 선택하는 게 그나마 낫다. 라이트 맥주는 도수와 칼로리를 낮춰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국내 맥주로는 하이트맥주의 프리미엄 S(사진)가 식이섬유를 100mL당 0.5g씩 넣어 다이어트를 도와준다. 카스 레몬도 3.9도로 국내 맥주로는 도수가 가장 낮다.


마실 때 폼나는 맥주, 이야깃거리를 가진 맥주는?

벨기에 맥주 두블(Duvel · 사진)은 바에서 사먹으려면 작은 병 하나에 1만원이 훨씬 넘는 고가지만 그만큼 많은 매력이 담겨 있다. 두블은 ‘악마’를 뜻하는 플랑드르 지방의 말로 독특하게 이스트를 병 안에 넣어 병 속 발효를 시도해 병에 넣은 지 1년 된 것을 마셔야 제 맛이다. 1759년 아일랜드의 아서 기네스가 만든 기네스 스타우트도 이야깃거리가 많은 맥주 중 하나다. 원료 구성과 제조 공법이 수백 년간 비밀리에 관리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회사가 『기네스 북』을 만든 회사라는 것 등 안주로 삼을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재미있게 맥주를 마시는 또 하나의 방법은 일반맥주와 흑맥주를 섞어 마시는 것이다. 일반맥주 절반을 붓고, 흑맥주를 부으면 맥주잔 위에 흰 거품이 눈처럼 쌓이는데 이런 맥주 칵테일을 화이트 톱(White Top)이라 부른다. 흔히 벡스다크와 벡스를 1 대 1로 섞어 마시는 사람이 많다.


아시아 여행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

맥주의 고향은 유럽이지만 아시아에도 이에 뒤지지 않는 ‘명품 맥주’가 많다. 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여행 중에 맛본 아시아 맥주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일단 아시아의 맥주 강국은 일본인데 아사히(사진), 삿포로, 기린, 에비스 등이 종류별로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 외에 독일이 중국의 칭다오를 지배할 때 맥주 공장을 세우면서 생산이 시작된 칭다오와, 스페인의 기술을 이어받은 필리핀의 산미겔은 전문가들이 꼽는 아시아의 명품 맥주. 싱가포르 맥주인 타이거, 태국의 싱아, 베트남 맥주 하노이 등은 그 지역의 음식들과 잘 어울린다.


다음은 간단한 Tip 몇 가지

 

1 . 맥주는 냉장고에 넣지 말고 김치냉장고에 넣어라

흔히 ‘찬 맥주’를 선호하지만 맥주가 너무 차가우면 미각이 마비돼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맥주는 여름엔 4~8도, 겨울에는 8~12도 정도로 마시는 게 가장 맛있다. 따라서 3∼4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좋다. 난 2도 정도에 즐긴다. 워낙 찬 걸 좋아하는 체질이라서.

2. 집에서도 꼭 잔에 따라 마셔라

맥주를 잔에 따르면 탄산이 적당히 날아가 맛이 좋아진다. 따라서 작은 병에 든 맥주나 캔맥주도 그대로 마시지 말고 꼭 잔에 따라 마셔라. 단 잔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거품이 잘 안 생기므로 깨끗하게 말린 컵을 써야 한다.

3. 잔에 맥주를 따를 땐 조금씩, 여러 번에 나눠 따른다

거품은 맥주의 맛을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이 생기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연스럽게 맥주 자체에서 올라오는 거품이고, 다른 하나는 맥주가 컵의 벽에 부딪쳐 생긴 거품이다. 컵에 부딪쳐 생긴 거품은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맥주를 여러 번 나누어 따르면 맥주 자체에서 생겨난 거품이 많아져 맥주의 맛이 보호된다. 얼린 컵을 사용하면 거품이 더 잘 생긴다.

4. 맥주는 입안 가득 넣고 왈칵왈칵 마셔라

맥주는 조금씩 맛보는 것보다 한 모금 입에 가득 채워 벌컥벌컥 소리를 내며 마시는 게 좋다. 입안에 차가운 맥주가 들어왔을 때의 청량감, 빠르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쌉쌀한 느낌이 맥주의 매력이다.

5. 맥주를 빨리 식히고 싶을 땐

급하게 손님을 맞아야 할 땐 분무기로 맥주병에 물을 뿌려 냉동실에 넣어라. 물이 기화하면서 온도가 내려가 맥주가 금세 시원해진다.

  

 

 

 Beer Barrel Polka (맥주통 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