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식 축산업이 ‘괴물 바이러스’ 키운다

- 동물~사람(人獸)을 오가는 전염병 잇단 출현 ‘이례적’

- 빵 찍어내듯 근친번식·밀집사육 ‘전염’ 노출

- 멕시코 발병 추정지, 돼지 100만마리 대량사육

 


»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한 병원에서 교육훈련 담당자(가운데)가 두 직원에게 돼지인플루엔자 감염 방지에 사용되는 호흡기 보호 마스크의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다. 오클랜드/AP 연합

동물들의 보복이 시작된 것일까?
동물을 생명이 아니라 공산품으로 취급하는 공장식 축산업을 배경으로 한 인수(人獸)공통 전염병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현재 확산되고 있는 돼지인플루엔자를 비롯해 조류인플루엔자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 최근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은 동물에서 기원한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과거에도 동물에서 기원한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을 일으키긴 했지만, 최근 10년 사이에 서로 다른 인수공통 전염병이 연이어 발생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품종의 동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업이 인수공통 전염병의 발생과 전파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정부가 이번 돼지인플루엔자의 발원지로 주목한 곳도, 세계 최대 돈육 생산기업인 "스미스필드푸드"가 경영하는, 베라크루스 주(州) 페로테에 있는 "그란하스 카롤" 농장으로, 약 100만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이 농장 주변의 파리 떼와 배설물이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28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50~60년 동안 인수(人獸)공통 전염병의 발생은 과거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량 축산이 야기하는 유전적 다양성의 부족과 열악한 환경이 원인이다”라고 지적했다.

공장식 축산업은 인간의 수요를 충족하는 품종을 보통 근친번식을 통해 만들어낸다.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져 특정 질병에 집중적으로 노출될 뿐만 아니라, 밀집한 사육환경이 급속한 전염의 배경이 된다.

동물에서 기원한 바이러스는, 인체 면역계가 전혀 인식하지 못해, 치명적일 수 있다. 1918년 전세계 인구의 40%를 감염시키고, 약 5천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이 대표적이다.

당시 감염자와 사망자의 대부분이 젊은 성인들이었다. 인체가 면역체계를 갖지 못한 질환이어서, 젊고 건강한 인체가 오히려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이번 돼지 인플루엔자도, 젊고 건강한 성인에게 많이 발생하는데다, 변종이 다양하게 확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돼지 인플루엔자는 보통 가벼운 독감 증세만 보이지만, 이번에는 이미 15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돼지 인플루엔자의 변종 바이러스는 돼지·조류·인체 바이러스의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어, 전염도가 매우 높은 치명적 질환일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항 교수는 “학계에서는 돼지와 조류 바이러스가 유전자 교환을 할 경우, 치명적인 새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며 “이번 돼지 인플루엔자가 그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하루 1억3700만마리, 해마다 500억마리의 소, 돼지, 닭 등 가축이 도축되고 있다고 고발했다.

1990년대 초반 광우병과 구제역이 발생하자, 유럽에서는 공장식 축산업이 원인으로 지목됐고 동물권 보호운동이 벌어졌다.

빠른 성장을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족의 뼈와 살까지 갈아 먹이고,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밀집한 사육 환경에서
가축을 키우는 공장식 축산업이 인수공통 전염병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독일은 2002년 세계 최초로 헌법에서 동물권을 보장했다. 동물~사람(人獸) 공통 전염병은, 생명과 자연에 역행하는 인류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 동물권 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돼지 인플루엔자는 또 한번의 경고장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