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신달자 (낭송: 신명희)


백지 한 장 보냅니다.
열흘 밤 열흘 낮을
마주하던 백지
점하나 찍지 못한
이 마음 보냅니다.

백지가 아닌 막힘이 아닌
비어있음이 아닌
모름이 아닌
백지

어디서나 누구나 흔히
볼 수 있게 열려 있지만
결코 열려 있지 않은


한 생애를 건 예술가의
투혼처럼
나를 녹여 들어 부은
인고의 백자

빛이라는 빛
모두 가슴에 재우고
차라리 하얗게 숨어 숨쉬는
설레는 언어

보냅니다.
근접 못할
신의 말씀이듯
충만한 백지

그대 병상에
두어송이 백합이듯
이내 살 비치는
백지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