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에 대한 여름날의 추억 / 박현웅

(낭송:고은하)



혼기 넘긴 누님의 화단에는 오색의 꽃을 피웠고요
어머님의 가장 성스러운 장독대에서는
쪽두리 같은 씨방이 검은 속내를 터트리고 있었지요
꼬물대는 꽃술이 조화로와 마주하고 앉았는데
아! 글쎄, 도톰한 손가락 나를 향하며
고추 보인다고 놀리는 거예요
냅다 물호숫질을 해댓지요
여우와 호랑이가 결혼하는 날처럼
화단에서 장독대까지 무지개 뜨고요


누님의 시선에 노을이 자꾸 걸려요
뒤꼍 장독에 군대 간 형님을 위한 정한 수 올려지고요
하루살이 혼인 비행의 군무가 한동안 솟구쳐요
조용하신 아버지의 뽀얀 담배 연기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화단 위에 한참을 머물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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