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때도 아니고, 단풍이 드는 때도 아니고, 이렇게 어정쩡한 시기에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다니 좀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 날도 아닌, 이런 때 여행하는 게 진짜야."


   "아무 날도 아닌 날의 여행"이라고 남편은 말했지만, 최근에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잠을 설치는 날이 많은 남편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인지, 이 여행이 결코 아무 날도 아닌 날의 여행 같지는 않았다는 예감이 들었죠.



   두 시간이면 완연히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고, 장엄한 숲과 고개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코스모스가 활짝 핀 국도에는 오가는 차도 드물었습니다. 그 길을 달리던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 번쯤 내동뎅이쳐보는 거야.



   안도현의 시였습니다.

   혹시 남편은 '세상에서 팽개쳐진 느낌' 때문에 이 여행을 준비한 건 아닐까 싶었습니나. 파도가 제법 거친 동해를 보며 차를 마셨고 백사장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다시 집을 향해 떠났죠. 돌아오는 차안에는 침묵이 흘렀지만 그건 석먹함이 만든 침묵이라기보다는 무언의 공감이 만든 침묵이었습니다.


   차가 톨게이트를 지날 때,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 대신 "힘내요"라고 말했죠.


   남편은 잠깐 그녀를 바라보곤 다시 운전에 집중했습니다.


   그가 잡은 운전대처럼 세상이 그의 뜻대로 움직이진 않겠지요. 다만 어떤 일이 잇어도 바위처럼 굳건하게 곁을 지켜줄 내 편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특별한 여행'을 마치며 그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는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