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차갑고 냉정한 얼굴로 찾아 올 것이다. 액정 위로 문자를 찍어 넣으며 나는 유튜브를 뒤져 오래된 노래를 듣는다. 


   기쁨은 순간이며 슬픔을 길고 반복적으로 인생을 찾아 온다.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건 다 거짓말 아니면 착각이다. 어떤 인생에도 성공이란 없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며 길거나 짧거나 그 끝을 맞이한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성공이라는 환상에 매달려 생을 소비하지 말자.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 힘들고, 다 외롭고,, 다 좌절한다는 사실은 차라리 위로가 되지 않는가. 실패와 좌절을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일 때, 그 받아들임이 답답하고 솔직할 때 마음은 오히려 평화를 향해 다가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마에 주름살 몇 개 늘어나는 것이다. 주름살 몇 개쯤이야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사람들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말한다.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마음이 가파르지 않은 지금이 좋아." 그리고 조금 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령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러 가서 내리막길을 만나면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 "관절 때문에 무리해선 안 돼"하며. 


   그러나 그때까지도 여유가 있다. 그까짓 트레킹이야 할 만큼 했으니 안 해도 그뿐, 마음은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야지"하며. 그런데 침대에 누워 스스로의 힘으로는 돌아눕지도 못한 채 먹고, 싸고, 씻고, 그 모든 걸 누구누가의 힘을 빌려 할 수밖에 없는 날이 오면 어쩌겠는가? 그때도 마음은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거기까진 생각 안 해보셨다고? 아니, 생각할 필요가 뭐 있냐고? 부디 당신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빈다. 생각건대 그때 가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잇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남은 이들이야 아프겠지만 살 만큼 산 뒤라면 홀연히 세상을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살 만큼 살았다는 것은 각자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남의 손을 빌려 호구해야 할 정도로 삶이 구차해지기 전에 ㄸ날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랫동안 누군가의 병구완을 하다 보면 그런 마음이 든다. 인생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지겹게 하지만, 시시각각 그 모습을 바꾸며 삶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한결같다는 뜻이 좋아 '여여(如如)하다'는 표현을 쓴다 해도 인생이 제 맘대로 흔들어놓은 파란(波瀾) 속에서 여여하게 살기란 마음을 길들이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은 영어나 수학만은 아니다. 마음을 길들이고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누가 가르칠 수 있겠는가? 인생 학교니 치유 학교니 이름을 걸지만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이야말로 여여하게 살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큰 사람이다. 


   제 마음도 마음대로 못 하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르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가르친다는 것은 인생의 험한 길을 제대로 경험하고, 제대로 넘어온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다. 가르치기보다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삶에서 조금 안다고 스승이 되려 하지 말자. 조금 안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다.




글 출처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김재진 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