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도구를 써서 일을 하려면 그 도구를 능숙하게 다뤄야 합니다.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자가 덤벼들면 꼭 탈이 나기 일쑤입니다. 재료와 도구에 두루 통하는 통찰과 손에 익은 기술이 함께 해야 탈을 면할 수가 있습니다. 도구를 다루는 기술의 극단은 무위로써 하는 것이겠지요. 섣부른 것은 인위의 것이지요. 우리 삶 또한 그렇습니다. 도구를 다루듯 조심하고 무위의 도를 익혀 거기에 따라야 하지요.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잔디와 나무들에 물을 주고 이른 아침을 먹은 뒤 청류재엘 갔습니다. 어제 오후 안성여고에서 문학강연을 끝내고 여러 선생님들과 점심을 함께 먹은 뒤 돌아오는 길에 청류재를 들렀더니 주인은 경상도 상주에 가 있다고 했지요. 약속을 하고 들른 것이 아니었으나 미안해할 것도 아닌데, 주인은 멀리서 전화로 헛걸음을 미안하다고 했지요. 잔디를 깎고 있던 주인의 아들이 내주는 얼음 띄운 오미자차를 얻어 마시고 청류재를 나왔었지요.

 

 

  묘목들에게 물을 주고 있던 주인에게서 쪽동백나무 묘목과 충층나무, 차나무 묘목을 얻고,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연못 공사에 대해 이지저리한 사항들을 의논했습니다. 

 

  공도에 사는 김 선생 댁에 청류재 주인이 만든 연못이 있다고 하기에 함께 가보기로 했지요. 공도의 농협축산연구소 초지를 지나 산두리 쪽 방향으로 꺾어져 들어가자 김 선생 댁이 나왔습니다. 저는 물론 초행길이지요. 육십대에 이른 부부가 마당에 그득하게 심은 400여 종의 야생화를 돌보느라 밖에 있었으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던 것이지요. 연못은 작고 큰 돌들을 주위에 쌓았는데, 제 눈에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지요. 연못은 나 연못이요 하고 뻐기고 있는 듯해서 좋은 인상이 아니었지요. 주변 야생화들이 만들어 낸 경관과 조화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지요. 무엇보다 더운 기운 속에 죽은 듯 미동도 않는 물들이 미욱해 보였지요. 그 죽은 듯 고용한 물 속에 ㅂ2ㅏㄹ을 담근 수련 잎들이 떠 있고, 청록색 물이끼들이 지저분하게 연못 수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요.

 

 

  제 눈길은 정말 무성하게 잘 자란 야생화들 쪽으로 자꾸 나아갔습니다. 초면의 김천래 선생이 주겠다는 야생초들 을 염치없이 받았지요. 빙카마이너, 범부채, 태백기린초, 금꿩의다리, 톱풀, 제주쑥부쟁이, 섬백리향, 섬초롱꽃, 붉은초롱꽃, 흰젖제비, 제주양지꽃 등이 그것이지요. 그 중에서도 거의 사철 내내 푸른빛을 유지한다는 빙카마니너가 자그마한 동산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보기 좋았지요. 식재가 어렵지 않고 잘 번져 감히 다른 잡초들이 뿌리를 뻗을 염을 못한다 하니 연못 주변에 잔디 대신에 그걸 심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차를 마신 뒤 주인인 김 선생 부부와 때마침 방문한 서른 살이 되었다는 그 집 조카딸, 청류재 주인 등과 함께 안성 시내에 나와 콩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일행 모두가 아예 우리 집까지 옮겨와서 담소하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뒤 호미를 들고 밭에 내려가 뙤약볕 아래에서 야생화들을 심었지요. 햇빛을 가리느라 모자를 썼는데,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쏟아졌지요.

 

글 출처 : 느림과 비움(장석주, 뿌리와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