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데 왜 행복으로부터 조금씩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까? 원래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애초에 가지고 있던 귀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 같은 요즘,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필경사 비틀리>라는 소설을 떠올려 본다.

   월스트리트의 잘나가는 변호사에게 고용된 필경사 비틀비. 처음 얼마 동안은 마치 모든 서류를 먹어버릴 것처럼 미친 듯이 일하던 비틀비가 어느 날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못 하겠다”도 아니고, “하지 않겠다”도 아니고,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표현은 ‘일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둘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허먼 벨빌이 창조한 인상적인 인물 비틀비에서 ‘비틀비 증후군(Bartleby syndrome)’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스페인 작가 엔리께 빌라-마따스(Enrique Vila-Matas)는 위대한 작가들 중에 훗날 ‘글 쓰지 않는 편을 택한 작가’들을 연구했다. 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오스카 와일드, 사무엘 베케트, 비트겐슈타인, 랭보, 스탕달, 그리고 생에 말년에 “문학은 저주자”라고까지 말했던 톨스토이도 ‘비틀비 증후군’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시대게, 남다른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시대게,
남다른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진 못하더라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운명을 살아간
비틀비를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

글출처 : 그 말이 내게로 왔다(김미라의 감성사전, 책읽는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