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에 수북하게 들어 있는 우편물들은 우리가 살아온 한 달의 시간을 증명합니다. 그 우편물 중에서 신용카드 결제 대금 고지서를 펼쳐보면 우리가 네모난 카드 하나를 믿고 얼마나 많은 지출을 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달에 결재해야 할 금액은 얼마,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얼마에 샀으며, 일시불로 샀는지, 할부는 몇 개월로 했는지, 구체적인 사용 내역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 고지서가 어느 날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던가를 분명하게 기록한 내 삶의 보고서 같기도 합니다. 암호로 기록된 일기장처럼.

   신용카드 결제 대금 고지서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어느 날 삶이 내게 고지서를 보내올 때도 있지 않을까? 그 고지서에 내가 이 생에서 갚아야 할 영혼의 빚은 얼마인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상처를 얼마나 주었는지, 상대방의 상처는 일시불로 지급한 카드 대금처럼 빨리 회복되었는지, 아니면 36개월 할부로 장만한 가구처럼 그 상처를 내 마음에 오래오래 새겨두었는지…… 등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배달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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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이상하게도 큰 죄를 지었다 싶은 사람들은 이런 고지서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늘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사소한 실수일지언정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타인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애쓰며 살아온 사람들은 언젠가는 영혼의 채무가 기록된 고지서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고민하곤 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 내 삶과 더불어 다른 사람의 삶도 행복해야 한다고 믿으며 실천하는 것, 내 마음을 기꺼이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그리고 좀 더 분명하고 확실한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것, 그런 것들이 영혼의 고지서에 적힐 채무를 조금이라도 줄여주겠지요.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하는 날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글 출처 :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나무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