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고르다가 광고 문구를 보고 까르륵 웃음이 터졌다. ‘프로혼밥러를 위한 완벽한 도시락’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혼밥러’는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의 줄임말인데, 거기에 ‘프로’를 붙이니 ‘혼자 먹기의 달인’이라는 의미가 성립된다. 얼마나 혼자 밥 먹은 사람들이 많으면 이런 광고가 통할까 싶어 웃음 끝으로 쓸쓸함이 찾아왔다.

   항상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독립한다는 것은 우선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아닐까. 혼자서도 밥을 척척 해먹을 수 있다면 진짜 ‘프로혼밥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차선책은 음식점이나 편의점에서 간단히 한 끼를 먹을 때도 혼자 있음을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뭘 먹는지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소박한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것도 혼자 밥을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비결이다.

   어릴 때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면 ‘독립’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경제적 독립을 넘어 정서적 독립으로 가는 길은 어려웠다. 또한 혼자 잘 지낸다고 해서 독립심이 강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독립심은 강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부드럽고 유연해야 한다.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는 게 독립심의 필수 요소다. 그저 혼자 있음에 편해지기만 한다면 진정한 독립이라기보다는 ‘혼자 있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해갈 수 있다.

   진정으로 독립적인 사람은 타인과 함께 있을 때조차도 편안히 ‘혼자임’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굳이 강력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나의 나다움이 있는 그대로 전해지기만 한다면. ‘나를 표현해야 한다’라는 강박은 갖지 않은 게 좋다. 요컨대 독립은 경제적 독립을 넘어 정서적 독립을 향해야 하며, ‘나 혼자 있음’을 즐기는 것을 넘어 ‘함께 있을 때도 홀로 있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독립적인 삶을 꾸리면서도 동시에 외로움에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트레이닝은 바로 혼자 여행하기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일단 내 몸의 안전과 생존을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자신의 모든 소지품과 여권과 신체의 안전을 항상 신경 써야 하고, 위급한 상황이나 평소의 영어 실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에도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을 홀로 겪어내고 나면 엄청난 해방감이 밀려든다. 길치이자 방향치이며, 비행기 공포증까지 있던 내가 지금은 어딜 가도 주눅 들지 않고 그저 ‘모자란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된 힘은 바로 지난 10여 년간의 배낭여행에서 비롯됐다.

   여행을 통해 나는 일산의 노동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아무리 바빠도 ‘내 마음이 온전히 쉬는 시간’은 꼭 마련해야만 지치거나 병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으로 인해 나를 보살피는 기술, 나를 지키는 기술, 나를 단련하는 기술을 배운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내 최고의 무기인 ‘한국어’를 쓸 수 없다. 한국어로 소통하고 한국어 글쓰기로 독자를 만나는 나의 강점을 전혀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무력감’이 때로는 기분 좋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의 장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살아도 그렇게 힘들거나 외롭지만은 않았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알 수 없는 다음 행선지에 대한 설렘으로 나는 ‘익숙한 것들과 조용한 이별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재능, 나의 미래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해방감이야말로 진정한 자립심의 필수 요소다.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고 생각하기 위해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먼저 누군가와 함께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더 멋진 혼자’가 되어야 한다. 최고의 자립심은 ‘언젠가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와 열정이 동반될 때 비로소 완성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혼자 밥 먹기, 혼자 술 먹기, 혼자 살림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자립심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조차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혼자 있음의 편안함에 도취해 ‘함께 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자립심과 협동심은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다. 혼자 있을 때 강인한 사람이 함께 있을 때도 강인할 수 있다. 우리는 ‘1인 가구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자립심을 배우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그리고 아무리 불편한 사람과도 잘 지내는 길을 찾기 위해 자립심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위로받고,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용기를 얻으며, 힘들 때 수다를 떨 수 있는 단 한 변의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혼자 있기 위한 독립심이 아니라 언젠가는 누군가와 진정으로 함께하기 위한 독립심을 꿈꾸는 요즘이다.

글 출처 : 그때, 나에게 미처하지 못한 말(정여울, arte)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