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 지상 구간으로 올라왔습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휘황한 불빛들이 펼쳐졌습니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강물의 일렁임도 아름다웠지만, 철교를 비추는 불빛과 강의 양편으로 펼쳐진 고층아파트의 불빛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깥 풍경을 보다가 그는 문득 그 풍경과 겹쳐서 보이는 자기 얼굴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검은 도화지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어두운 밤하늘과 아득한 불빛이 보이는 유리창, 거기에 세모꼴 손잡이 하나를 간신히 잡고 규칙적으로 흔들리며 강을 건너고 있는 자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지쳐서 표정 없는 얼굴,
처진 어깨에 얹혀 있는 절망의 두께,
나이가 들어 무너지기 시작한 턱선, 그리고 탁한 눈빛…….
유리창에 비친 저 낯선 남자는 누구일까, 싶었습니다. 

   다리를 건너는 짧은 시간,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창문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향해 “사느라 고생이 많은 당신”이라고 위로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하철 안에 고단한 꽃들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한 뼘의 기댈 공간도 없이 손잡이 하나에 의지한 사람들, 피곤함을 안고 중심으로부터 멀어져 변방으로 가는 사람들,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탈 사람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스스로를, 지하철에 흔들리며 가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인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오늘 하루 내 몫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이
위대하지 않다면 대체 무엇이 위대한 일일까요.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건 하루를 열심히 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다.

   그런 생각이 기차 꼬리처럼 길게 따라오는 저녁이었습니다.

글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은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