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한 끗 차이로 뜻이 달라지는 영단에’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considerable(컨시더러블)’은 ‘중요한, 상당한’이라는 뜻이지만, ‘condiderate(컨시더레이트)’는 ‘사려 깊은’이른 뜻이며, ‘industrial(인더스트리얼)’은 ‘산업의’라는 뜻이지만 ‘industrious(인더스트리어스)’는 ‘성실한’이라는 뜻임을 외우고 또 외웠다.

   특히 가장 눈길을 끄는 낱말 쌍은 ‘childish(차일디시)’와 ‘chidlike(차일드라이크)’였다. 두 단어 부두 ‘차일드child’에서 파생되었지만, 그 뜻은 천양지차다. ‘차일디시’는 ‘유치한’이라는 뜻으로 어린아이의 나쁜 면을, ‘차일드라이크’는 ‘순진한’이라는 뜻으로 어린아이의 좋은 면을 부각시킨 단어이다. ‘차일디시’라는 단어를 어른에게 쓰면 모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단어를 외우면서 나는 ‘차일디시한 어른’이 되지 말고 ‘차일드라이크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든다. 유치함이 그렇게 나쁜 건가? 유치함을 어느 정도는 간직해야 건강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 자넷 잭슨은 너무 일찍 스타가 되어버려 어린 시절을 통째로 잃어버린 자신과 오빠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이런 말을 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결코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한 번도 어린아이가 될 기회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귀환한다’는 프로이트식 주장처럼, 제 나이에 맞게 살아갈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은 끝없이 놓쳐버린 유년 시절을 아쉬워하며 뒤늦게 유치한 행동에 집착한다. 어린 시절에는 조숙하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 어른스러움을 연기했는데, 지금은 ‘그때 내 나이답게 살아볼걸’, ‘어른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 내 느낌을 거침없이 말하며 살아볼걸’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렇다면 어른스러움이 주는 고통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해지는 것이다. 어른들이 뭐라든 아랑곳없이 춤추고 노래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쑥스러워하며 낯을 가린다면, 아이다움을 잃어가는 징후다. 춤추고 노래하는 기쁨보다 어른들이 날 어떻게 볼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으로 잠 못 이룬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스러움의 두 번째 고통은 자꾸만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좋은 되새김질은 반성이나 성찰이 되지만 나쁜 되새김질은 집착과 강박이 되어 ‘과거의 나’라는 포승줄이 ‘현재의 나’는 물론 ‘미래의 나’까지 친친 옭아맨다.

   어른스러움의 세 번째 고통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내일은 또 뭘 하고 놀까’가 유일한 고민거리인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잠시도 현재를 순수하게 그리고 온전히 살지 못한다. 아이들은 ‘쓸데없는 생각’과 ‘쓸데 있는 생각’을 나누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나는 모든 일에 흥분했고, 모든 것에 호기심을 느꼈으며, 어떤 것도 쓸데없다는 이유로 버려두지 못했다. 지금은 생각이 피워 올리기도 전에 이미 생각 자체를 검열하는 ‘어른의 시선’이 나의 ‘소중한 유치함’을 잔뜩 짓누르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 가장 안 좋은 점 중 하나는 상처받기 싫어서 아예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는 것이다. 꿈은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비관하고, ‘어차피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라고 자택하고, 열심히 노력해봤자 어차피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어차피’가 어른스러움의 본질이다. 피카소는 이미 열다섯 살 때 벨라스케스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아이처럼’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는 60년이 걸렸다고 한다. 어른 되기보다 아이 되기가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피카소는 온몸으로 느낀 셈이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달래고 다독이고 때로는 야단을 쳐서 ‘어른스럽게’ 만드는 게 심리학의 기본 과제라고 하지만 때로는 그런 심리학의 전형적인 해법에 염증을 느낀다. 우리는 무조건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가려져 어린아이다움을 간직하는 법이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게 아닐까.

글 출처 : 그때, 나에게 미처하지 못한 말(정여울, arte)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