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궁 새가 울기만 하면 떠나간 그리운 임 오신댔어요”

   노래 가사만 들어도 큰누이가 떠오른다. 구슬프게 우는 새소리는 배가 곪아 죽은 사람이 새로 변해서 우는 소리라고 큰누이는 말했다. 솥 적다고 울던 새가 배가 고파 울면서 따먹는 꽃이 진달래라고도 들었다. 어린 나는 큰누이가 죽으면 소쩍새가 될 줄로 믿었다. 나를 업고 키운 큰누이가 친정에 왔던 추운 겨울밤이었다. 호롱불 아래에서 엄마를 껴안고 꺼이꺼이 울던 소리를 이불 속에서 자다가 들었다. 진달래꽃 피는 계절이 오면 두견새 우는 소리가 그때 서럽게 우시던 큰누이 울음소리처럼 들려온다.

   초등학생 때 옆집 할머니 부탁으로 주산 과외선생이 되었다. 과외를 하던 때에는 간식으로 고구마나 단술을 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진달래꽃 지게미를 간식으로 내오셨다. 설탕에 재어둔 발효된 진홍색 지게미에는 달콤한 술맛이 남아 있었다. 처음 맛본 진달래 지게미의 달콤하고 싸한 술 냄새는 입맛에 맞았다. 내가 가르치던 후배들은 술 냄새가 난다며 먹지를 않았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탓이었을까? 나는 싸한 술 냄새가 스며든 지게미를 수저로 눌러 나온 진달래 꽃술을 맛나게 마셨다. 대접에 눌러 짠 진달래 꽃술을 마시고 나니 목소리도 커졌다. 가감산 털고 놓기를 몇 번이나 하고 나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수업하기가 어려워 곱셈과 나눗셈 문제 풀이를 시킨 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간 줄도 모른 채 할머니의 큰 외손녀였던 여자친구 목소리에 눈을 떴다. 내 얼굴을 내려다보던 친구의 눈과 마주쳤다. 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몸을 일으켰다. 수업받던 후배들이 사라진 큰 방안에서 할머니는 웃으면서 일어나셨다. 반닫이 위에 베개와 이불을 내려놓으며 “더 자고 가라.”고 하셨다. 무안해진 얼굴로 방안을 뛰쳐나와 마루 밑 검정 고무신을 끌고 나왔다. 밤하늘에는 아버지가 알려준 삼태성 별빛이 빛나고 있었다. 얼굴에 밤바람이 닿으면서 상쾌한 기분으로 휘파람을 불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해리 장날이자 일요일이었다. 친구의 외할머니는 장터로 나가 운동화를 샀다면서 집에 가져오셨다. 외손자와 그의 친구들에게 주산 과외를 시키는 나에게 과외비 조로 운동화를 사 온 것이다. 청색 바탕 운동화는 하얀색 끝으로 타원형 양쪽을 조인 멋진 운동화였다. 닳아지지도 않는 생고무 밑창 운동화라 더 비싼 거라고 말씀하셨다. 국민학생 신발이야 모두 만월표 경성고무 검정 고무신만 신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중학생이 되어야만 신어 볼 운동화를 받아들고 나는 입만 벌린 채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운동화를 이불 속에 감추고 잠이 들었다. 등굣길 신작로에 수많은 학생 중 운동화를 신고 다닌 학생은 혼자뿐이었다. 아니 학교 전체에서도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 보이지 않던 때였다. 한 번만 운동화를 신어 보자고 보채던 친구들에게 운동화가 닳아진다고 뻐기던 그때는 왕이 된 듯 행복하였다. 이십 리 편도 버스 삯이 15원 하던 때 350원짜리 운동화였다. 새봄에 중학생이 되었다. 교복과 신발까지 검은색 일색이던 시절이었다. 진학 못 한 친구들은 교복과 운동화를 신은 친구들을 보고 먼발치부터 피해 다녔다. 운동화는 중학생들만 신는 신발로 알던 때였다. 10명이 넘던 여자 동창 중에 홀로 중학교에 입학했던 여자친구도 중학생이 되고 나서 파란색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남, 여가 유별하던 1970년대였다. 남학생들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왕복 16킬로미터를 통학길을 걸어 다녔다. 신작로가 아닌 지름길로 걷던 산길마다 진달래가 만발했다. 하굣길에 따먹던 진달래는 간식거리였다. 진달래 꽃잎을 따 먹던 파래진 입 안을 보며 서로 웃기도 했다. 진달래꽃 술의 달콤했던 기억으로 진달래 꽃술을 집에서도 담그기로 하였다. 앞산과 뒷산에 들불처럼 피고 지던 진달래꽃을 뒷산에서 가서 같이 땄다. 작두로 퍼 올린 우물로 씻은 진달래꽃을 채반에 말렸다. 항아리에 꽃을 먼저 담고 그 위에 같은 양의 설탕으로 재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 아버지는 대두병 2개의 소주를 부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백 일이 지나고 술을 걸렀다. 술을 거르고 남은 지게미를 맛보았으나, 친구 할머니가 주셨던 진달래꽃 술의 단맛이 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아무도 몰래 아버지가 광에 보관해 둔 두견주를 마셨다. 머리가 빙빙 돌아 아랫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들에서 들어온 아버지는 깨우면서 어디 아프냐고 물었지만, 고개만 저었다.

   진달래꽃 술에 취한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었다. 숨겨둔 비밀이 되살아난 것은 충남 한산에 사시던 처형이 사 온 소곡주를 마시고 나서였다. 한산의 명주 소곡주의 원재료는 진달래꽃과 찹쌀이다. 어느 봄날 항공대장 C 선배는 한산에서 공수해 온 소곡주나 마시자고 나를 불러내었다. 진달래꽃 술에 취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과음했던 그날 밤, 앉은뱅이 술의 위력에 다리가 풀려 나가떨어졌다. 널따란 선배의 어깨에 기대어 화물(貨物)처럼 방안으로 배달되었다. 선배는 쌩쌩한데 혼자 취한 나를 본 아내의 지청구에 나는 화물(貨物)이 괴고 말았다. 잊고 살아온 친구 할머니의 외손주 사랑을 외손주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대여섯 켤레의 외손녀 신발을 사주면서 운동화 선물에 고마워했던 그때가 다시 떠올랐다. 진달래 만발한 봄날이 오면 할머니 무덤에 두견주 한 잔 올리고 싶다.

글출처 : 아버지의 뒷모습(이준구 수필집, 수필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