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화가 끌로드 모네는 같은 곳에서 35년 동안 살면서 똑같은 수련(水蓮)만 그리며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화가 세잔느는 ‘생트빅트와르’라는 산을 이십 년 동안이나 그렸다고 하지요.

   평생 한 가지 일에 인생을 바치고,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한 하늘 아래에서 인생을 보내는 그런 삶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에만 평생을 바치는 인생이란 따분하지 않을까요?

   모네가 그린 수련과 세잔느가 그린 산들.

   그러나 꽃과 산을 그린 수많은 그들의 그림은 어느 것 하나같은 느낌을 주는 게 없습니다.

   마치 모네가 가른 수많은 수련 그림처럼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거기서 거기인 일상을 반복하며 인생을 보냅니다. 꼭 같은 여름을 보내고 꼭 같은 가을을 맞이하며.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서른 번, 마흔 번, 쉰 번 맞이하는 가을은 같은 계절이지만 매번 똑같지는 않습니다.

   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돌 틈의 제비꽃에서 시작되며 피어 나는 봄은 서른 살 때와 마흔 살 때가 다르고, 쉰 살 때 또 다릅니다.

   깃발이 흔들리는 걸 보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인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인가 시비를 가르던 사람들에게 혜능선사는 바람도 깃발도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른의 봄이 다르고 마흔의 봄이 다르며 마침내 쉰의 봄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또한 찾아왔다가 물러가는 계절의 모습이 다른 것이 아니라,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다른 것이겠지요.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우연히 어깨 위에 내려앉은 참새를 보고, ‘오늘 한 마리 참새가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건 내게 그 어떤 계급장보다도 높은 훈장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긴 장마와 폭염 끝에 찾아오는 가을, 끝나지 않을 듯 길게 느껴지던 냉혹한 겨울을 뚫고 피어나는 봄. 그렇게 우리 어깨 위로 내려앉는 계절은 정말 그 어떤 계급장보다 높은 훈장 아닐까요?

   이번 봄은 또 어떤 꽃들이 들판에서 피어나고, 어떤 빛깔의 단풍이 가을 산천을 물들일지 다가오고 물러가는 계절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이제 몇 번이나 가을과 봄을 더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평생 수련만 그렸던 화가의 작품이 삶의 연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듯 내 안에 왔다가 물러가는 계절은 모네의 수련만큼이나 다채롭습니다.

글출처 : 이 별에 다시 올 수 있을까(김재진 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