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수녀님과 법정스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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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어 보니

                                             법정 스님

 

병원에는 친지들이 입원해 있을 때 더러 병문안을 가곤 했는데,
막상 나 자신이 환자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흔히 이 육신이 내 몸인 줄 알고 지내는데,


병이 들어 앓게 되면 내 몸이 아님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내 몸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앓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며 따뜻한 손길이 따르기에 결코 자신만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병을 치료하면서 나는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인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지내온 내 삶의 자취를 돌이켜 보니 건성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주어진 남은 세월을 보다 알차고 참되게 살고 싶다.


이웃에 필요한 존재로 채워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앓게 되면 철이 드는지 뻔히 알면서도 새삼스럽게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나를 에워싼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으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병상에서 줄곧 생각한 일인데 생로병사란 순차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자연사의 경우는 생로병사를 순차적으로 겪지만 뜻밖의 사고(事故)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차례를 거치지 않고 생(生)에서 사(死)로 비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삶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인생을 하직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언제 어디서나 삶은 어차피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순간을 뜻있게 살면 된다.
삶이란 순간순간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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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을 향해가는 문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결움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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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法頂·78) 스님이 지병 악화로 입원 중입니다.
법정 스님은 지난 3~4년간 폐암으로 투병하고 계시다가..
다시 병악화로 입원중..

이해인(66) 수녀님도 암투병중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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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法頂)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의 아름다운 편지

티없이 맑고 깨끗함을 간직한 두 분의 아름다운 영혼의 편지를
저 같은 속세(俗世)의 인간이 글을 올린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종교의 가르침은 다르더라도 사회의 공동 선(善)을 추구하는 것은 같습니다.
예수 님의 헌신적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심은 속세(俗世)에서는 같은 길 입니다.

 
속세를 떠나서 사시는 두 분들의 사랑과 자비의 만남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多 종교의 사회 속에서, 서로 웃으며 살아가는 것은 다 같이 행복을 만드는 길 입니다.
종교의 벽을 넘어,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사회를 이끌기 위하여 서로 사랑 합시다.
아래 글은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담아 보내는 두 분의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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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께
스님,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옷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 던 스님,
시는 꼿꼿이 앉아 읽지 말고 누워서 먼 산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가끔 삶이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 냄새를 맡아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며칠 전엔 스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 오래 묵혀 둔 스님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하나같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향기로운 빛과 여운을 남기는 것들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 회색 줄무늬의 정갈한 한지에 정성껏 써보내 주신 글은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그리스도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의 말씀'이라고 그곳 수녀들이 표현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잔잔한 깨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어느 해 여름,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젠 주소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가신 데다가 난해한 흘림체인 제 글씨를 늘처럼 못 마땅해 하시고 나무라실 까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두고 지냈지요.

 
스님, 언젠가 또 광안리에 오시어 이곳 여러 자매들과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 대조'도 하시고, 스님께서 펼치시는 '맑고 향기롭게'의 청정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이곳은 바다 가 가까우니 스님께서 좋아 하시는 물 미역도 많이 드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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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잡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들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수녀님, 예수 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 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 뜰에까지 울려 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에는 해질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 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淸安)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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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뛰어넘어 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스님 두분..

암 투병 중에도 늘 자신보다 남을 위해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이성과 종교를 초월한 두분의 사랑...
그건 인간에 대한 사랑....조건없는 무한의  사랑이지요.

 
암과의 싸움에서도 늘 초연하시며 남을 먼저 걱정하시고 계시는 스님..
수녀님의 빠른 쾌유 바랍니다.
아직 이승에 생을 접기엔 우리들이 준비가 되어있질 못한 관계로..

이제 곧 꽃들의 향기가 언 들녘을 녹일 텐데 그 들녘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 마음도 녹였으면 참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무엇보다 수녀님과 스님의 몸 깊숙이 박힌 암(癌) 뿌리조차도 녹아서 마침내 몸속에는 꽃 뿌리만이 가득해서 이 세상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의 꽃과 향기를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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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 '희망은 깨어 있네' 일부



[동아일보]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동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