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서시 / 고은영


                사실은 오늘
                저린 가슴에 만선 된 비애는
                청회색 안개 길을 휘돌아 내렸다.

                길 모퉁이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잃어버린
                영혼의 편린들이

                검붉은 핏빛으로
                군데군데 물이 들어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었다.

                부유하여 떠도는 존재의 내면에 대하여
                그리고 동면한 욕망의 두께에 대하여
                인간의 부피만큼 난해한 것이 또 있을까?

                차라리 그늘진 내면이 부끄러운 것은
                아직도 토해내야 하는
                퇴폐적 욕망의 군더더기가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이 그리워
                오월 보리처럼 푸른 녹색 사랑을 그린다.

                그래, 어느 시인이 말처럼
                사랑하다가, 사랑하다가
                사랑이 쏜 화살에 맞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M/ 그린로즈 Main 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