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마누라

-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수기 금상 수상작
- 황덕중 / 강원도 교육삼락회 사무처장, 전 내촌중학교 교장

내 아내가 키우는 화초 중에는 값진 것이 하나도 없다.

화초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돈 주고 사는 일이 별반 없다.

기껏해야 풍물시장에 5일장이 서는 날 이삼천 원짜리나 하나 정도는 사지만,

 제법 근사한 화원에 가서 몇만 원씩 턱턱 내고 이름 있고 고급스러운 화초를 사는 일이 없다. 나는 이왕 화초를 기르려면 잡다한 것 다 치우고 본때 있는 것 몇 분만 기르지 그러느냐고 하면, 아내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그 이름도 모를 잡다한 것들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주워 들여 앞 발코니가 꽉 차도록 늘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며 정성을 들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화초 같지도 않은 것들이 봄이 되니까 일제히 꽃을 피우는 것이다.

군자란, 철쭉, 이런 것 한두 가지 빼고는 이름도 모를 것들이 무슨 반란이라도 하듯이 너도나도 하고 일제히 울긋불긋 봉오리를 터뜨린다.

비싼 게 아니니까 제법 귀티가 나거나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작품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동산에 올라가 아무 꽃이나 만나도 그게 없는 것보다는 있는 쪽이 나아서 거기서 어쨌든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은 충분히 든다.

품위 있고 고급스런 정서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격식 없이 편안하게 앉아서 즐기는 토속음식의 맛 같은 것이어서 제법 그럴듯한 기쁨을 아침마다 맛보곤 한다.

다 아내 덕이다.

그렇더라도 그걸 보며 마냥 즐거움에 빠져 희죽거리는 아내가 내게는 치근하게 느껴진다.

바보 같은 마누라. 남들은 고급 주택에 화분 하나에도 몇 십만원씩 하는 것들을 즐비하게 늘어놓고는 우아한 드레스를 걸치고 느긋이 완상하는 삶에도 만족을 못 느껴서 더 비싼 화초, 더 고급스런 꽃을 욕심부리는 데, 이 마누라는 욕심이 없는 건지 자존심이 없는 건지, 그 싸구려 화초들에 흠뻑 빠져들어 늘 싸구려 꽃처럼 품위 없이 히죽거린다. 바보 마누라.

발코니나 좀 널찍하면 또 모른다. 아이들 다 나가 살고 달랑 우리 부부만이 사는데 넓으면 뭐하느냐고 바짝 줄인 아파트고 보니 널찍한 구석이 어디 있겠는가? 어지간히 넓은 아파트를 계약했다가 계약금의 10%를 손해보면서까지 계약을 취소하고 평수 좁은 것으로 바꾼 것도 아내의 주장이었다. 그래 놓고도 아내는 하나도 후회 같은 것이 없다.

자기 친구들은 부부만 살아도 넓은 데 살고 있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정도면 일본 사람들 살 듯 하면 대궐이라고 하면서 대 만족이다. 부부 모두 건강하니 좋고, 젊어서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 마음껏 누리며 사니 좋고, 아주 넉넉지는 않지만

연금 타서 걱정 없이 사니,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냐며 늘 만족이다.

그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고, 고전무용을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그리고 성당에서 레지오 활동이라나 하는 것을 통해서 부지런히 봉사 활동도 다닌다. 그게 또한 행복이다.

봉사활동 갈 때에 내가 차라도 태워 주면 그게 또 그렇게 고맙다.

거기다가 같이 봉사활동 가는 동료를 같이 태워 주면 아내는 나에게 정색을 하며 고맙다고 한다. 내가 복 받을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넓은 아파트도 고급 차도 아니지만

아내는 그저 행복하다. 바보 마누라.

집에서 밥 차리지 말고 나가서 막국수라도 먹자면 아내는 금방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막국수는 닭갈비와 함께 이 지역을 대표하는 대중 음식이다. 그러면서 제일 싼 음식이다. 그래서 아무거나 간단히 먹자고 할 때에 우리는 항용 “막국수나 먹지.” 라고 말한다.

그런 음식일지라도 아내는 그것의 열 배도 더 비싼 양식을, 호텔 레스토랑에서 냅킨 턱밑에 걸치고 앉아서 금색 나는 포크로 우아하게, 그것도 고혹적인 색깔로 미각을 돋우는

와인 한 잔 곁들여 음미하는 파티의 여인보다 더 맛있게 먹는다.

그러고는 또 소녀처럼 순진한 웃음을 웃는다.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서 먹고 오는 경우, 아내는 행복이 곱빼기이다. 운전하고 있는 내 손을 꼬옥 잡이 주며, 또 그 바보 같은 미소로 나를 응시한다. 바보. 바보 마누라.

바보같이 아내는 순댓국을 제일 좋아한다. 술 먹는 남자들이나 좋아하는 순댓국을 아내가 좋아할지 몰라서 조심스럽게 한번 권해 봤는데, 그 뒤로 아내는 시골에 있는 밭에 갔다가 돌아오는 때에 너무 늦으면 으레 순댓국으로 저녁을 때우자고 한다.

뜨끈한 국물이 좋아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계절에 관계없이 아내는 그것을 먹으면 속이 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제일 좋다고 한다. 자기 체질에 맞는다나?

그러나 나는 안다. 꼭 그 싸구려 순댓국이 아내의 체질에 맞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다 친목회에서 꽤 고급스런 수준의 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내는 그걸 순댓국보다 맛없게 먹지 않았다. 순댓국이 제일 맛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늘 빠듯한 봉급을 가지고

아이들 셋 기르며 살아오는 동안, 싸구려에 이력이 찬 아내는 비싼 것에 대한 공포,

싼 것에 대한 친근감이 몸에 밴 것이다. 내 아내라고 해서 명품을 모르며, 고급 음식을 모르며, 윤택한 생활을 모르겠는가? 넓은 집, 고급 차, 명품 가구, 화려한 옷, 게다가 값비싼 고급 음식을 즐기며 사는 생활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어도, 아내는 그것들을 모두 외면하고 분수에 맞게 살고 있는 것이다. 내게 불평불만이라도 퍼부으면 답답한 속이라도 좀 풀리련만,

아내는 혼자서 새겨 삼키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모양이다. 바보.

지금 아내가 가장 만족해하는 것은 연금 생활이다. 내가 미련을 떨고 노후의 연금 생활을 계획해 온 것이, 아내나 내 생활에서 가장 잘한 것이라고 하며 대단히 만족해하고 있다.

모아 놓은 무더기 돈은 없지만, 먹고 사는 생활은 그런대로 근심이 없으니, 이 어려운 시국에 그게 어디냐는 것이다. 무더기 돈에 욕심 부리지 않고, 하루하루 근심 없이 살아가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아내는, 그래서 그런지 건강하다. 나도 건강하다. 욕심없음에서 얻어지는 건강은 부수입치고는 대단한 소득이다. 그러니까 아내는 소녀같이 헹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고,

그 웃음으로 인해서 나도 웃음을 배우고 있지 않은가?

햇살 퍼지는 아침 발코니에서 싸구려 화초들에게 물을 뿜어주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는 우아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은 웃음이, 그 바보 같은 웃음이 가득 번져 있다. 동물적인,

또는 사회적인 만족을 만끽하고 게트림을 하며 웃는 웃음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웃음이지만, 아내의 웃음은 담백하다. 바보 같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웃음을 머금은 아내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나 또한 바보일 수밖에 없다. 나를 바보로 만드는 내 아내는 바보 마누라이다.

- 출처 / 에세이마을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