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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이하윤
 

끝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 바퀴에
한 잎씩 한 잎씩 이내 추억을 걸면
물 속에 잠겼다 나왔다 돌때
한없는 뭇 기억이 잎잎히 나붙네

바퀴는 돌고 돌며 소리 치는데
마음속 지나가 옛날을 찿아가
눈물과 한숨만을 자아내 주노니

나이 많은 방아지기 하얀 머리에
힘없는 시선은 무엇을 찿는지
확 속이다 공잇소리 찧을 적 마다
강물은 쉬지않고 흘러내리네.
 
 
들국화
 
나는 들에 핀 국화를 사랑합니다.
빛과 향기 어느것이 못지 않으나
넓은 들에 가엾게 피고 지는 꽃일레
나는 그 꽃을 무한히 사랑합니다.

나는 이 땅의 시인을 사랑합니다.
외로우나 마음대로 피고지는 꽃처럼
빛과 향기 조금도 거짓 없길레
나는 그들이 읊은 시를 사랑합니다.







출생 : 1906년 강원도 이천
사망 : 1974년

시인·영문학자. 아명은 대벽(大闢),
후에 항렬을 따라 하윤으로 개명하였다.

호는 연포(蓮圃). 강원도 이천(伊川) 출신.
아버지는 종석(宗錫)이며, 어머니는 이정순(李貞順)이다.

1918년 이천공립보통학교,
1923년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26년 동경 호세이대학(法廷大學) 예과,
1929년 법문학부 문학과를 수료하였다.

전공은 영문학이나 대학 재학 중에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독일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1929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경성여자미술학교(1929∼1930)
동구여자상업학교(1942∼1945)에서 교편을 잡았고
≪중외일보≫(1930∼1932)
≪동아일보≫(1937∼1940) 기자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좌익의 프로문학에 대항하여
중앙문화협회를 창설하여 상무위원을 역임하였다.

혜화전문학교(1945),
동국대학교·성균관대학교(1947∼1950) 교수를 거쳐
1949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3년 정년퇴직하였다.

퇴직 후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겸 교양학부장으로 있다가 작고하였다.

1956년 유네스코아시아회의(일본 동경)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것을 필두로 한국 문화계 및 문학계를 대표하여
10여 차례나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였다.

≪민주일보≫·≪서울신문≫의 논설위원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문인협회 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방송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많은 공직을 역임하였다.

문학 활동은 1926년 ≪시대일보 時代日報≫에 시
〈잃어버린 무덤〉을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26년 ≪해외문학≫ 동인 및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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