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꿈/이문재

그가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물을 버렸다
내가 물을 버렸을 때
물은 울며 빛을 잃었다

나무들이 그자리에서
어두워지는 저녁, 그는 나를 데리러 왔다

자욱한 노을을 헤치고
헤치고 오는 것이

그대로 하나의 길이 되어
나는 그 길의 마지막에서
나는 그의 잔등이 되었다

오랫동안 그리워 해야 할
많은 것들을 버리고
깊은 눈으로 푸른 나무들 사이의
마을을  바라보는 동안 그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이미 사막의 입구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일부가
내길의 전부가 되었다

그가 거느리던 나라의 경계는
사방의 지평선 이므로
그를 싣고 걸어가는 모래 언덕은
언제나 처음이었다

모래의지붕에서 만나는
무수한 아침과 저녁을 건너는
그 다음의 아침과 태양

애초에 그가 나에게서 원한 것은
그가 사용 할 만큼의 물이었으므로
나는 늘 물의 모습을 하고 그의 명령에 따랐다

해빛이 떨어지는속도와 똑같이
별이 내려오고 별이 내려오는 힘으로
물은 모래의 뿌리로 스며들었다

그의 이마는 하늘의 말로 가득가득 빛나고
빛나는 만큼 목말라 했고
그때마다 나는 물이 고여있는 모래의
뿌리를 들추어 내 몸속에 물을 간직했다

해가뜨면 모래를 제외하고는 전부
해바람 불면 모래와 함께 전부 바람인 곳

나는 내 몸속의 물을 꺼내
그의 마른 얼굴을 씻어 주었다

그가 나를 사랑 하였을때
나는 많은 물을 거느렸다
그가 하늘과 교신하고 있을때
나는 모래들이 이루는 음악을 들었다

그림자 없는 많은 나무들이 있고
그의 아래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늘 지나가고 그 나무들 사이로 바람 불고
바람에 흐느끼는 우거진 식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짐승들이 생겨나고
내 잔등 위에서 움직이는 그가
그 모든 것을 다스려 죽을 것은 죽게 하고
죽은 자리마다 그 모습을 닮은
나무나 짐승을 세워놓고 지나간다

도중에 그는 몇 번이나 내 몸속의
물을 꺼내 마시고 몸을 청결히 했다
모래 언덕이 메아리를 만들어 멀리 멀리로
울려 퍼지게 하는 그의 노래

그가 드디어 사막을 바다로 바꾸었을 때
나는 바다의 환한 입구에서
늙어가기 시작했다

출렁 출렁 바다에서 그를 섬기고 싶었지만
그는 뚜벅 뚜벅 바다위를 걸어 나갔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고
또한 흘러와
사막이 아닌 곳에서 그를 섬기는 일이
사막으로 들어가는 일로 변하고
바다가 다시 사막으로 바뀌어
바다의 입구에서 내가 작은 배가 되지 못하고
종일토록 외롭고
밤새도록 쓸쓸한 나날

그가 나를 떠났을 때
나는 물을 버렸다
버리고 버리는 일도 다시 버리고
나도 남지 않았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