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風磬)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 문신



때가 되면 풍경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허공에 헛된 꿈이나 솔솔 풀어놓고
나 하루종일 게을러도 좋을 거야

더벅머리 바람이 살살 옆구리를 간지럽혀도
숫처녀 마냥 시침 뚝 떼고 돌아 앉는 거야
젊은 스님의 염불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 낮에는 부처님 무릎에서 은근 슬쩍 코를 골고
저녁 어스름을 틈 타 마을로 내려 가서는
식은 밥 한 덩이 물 말아 훌러덩 먹고 와야지

오다가 저문 모퉁이 어디 쯤
차를 받쳐 놓고 시시덕거리는 연인들의 턱 밑에서
가만히 창문도 톡톡 두들겨 보고
화들짝 놀라는 그들을 향해
마른 풀잎처럼 낄낄 웃어 보아도 좋을 거야

가끔은 비를 맞기도 하고, 비가 그치면
우물쭈물 기어 나온 두꺼비 몇 마리 앉혀 놓고
귀동냥으로 얻은 부처님 말씀이나 전해 볼 거야

어느 날은 번개도 치고
바람이 모질게도 불어 오겠지
그런 날은 핑계 삼아 한 사나흘
오롯이 앓아 누워도 좋을 거야

맥없이 앓다가 별이 뜨면
별들 사이로 지느러미 흔들며 헤엄칠 거야

그런 날이면 밤하늘도 소란스러워지겠지
그렇게 삶의 변두리를 배회하다가
내 몸에 꽃이 피겠지

푸른 동꽃[銅花]이 검버섯처럼 피어 오르면
나 가까운 고물상으로나 팔려 가도 좋을 거야

주인의 눈을 피해
낡은 창고에 처박혀 적당한 놋그릇 하나 골라
정부(情婦) 삼아 늙어 가는 거지
세월이야 오기도 하고 또 가기도 하겠지

늘그막에 팔려간 여염집 처마 끝에 매달려
허튼 소리나 끌끌 풀어놓다가
가물가물 정신을 놓기도 하겠지

그런 연후에 모든 부질없는 것들을
내 안에 파문처럼 켜켜이 쌓아 놓고
어느 하루 날을 잡아 바람의 꽁무니에
몸을 묻어도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