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알 수 없는 /안도현


한 며칠 집을 비워두었더니
멧새들이 툇마루에 군데군데 똥을 싸놓았다
보랏빛이었다
겨울 밤, 처마 아래 전깃줄로 날아들어
눈을 붙이다가 떠났다는 흔적이었다
숙박계가 있었더라면 이름이라도 적어놓고 갔을걸,

나는 이름도 낯도 모르는 새들이 갈겨놓은
보랏빛 똥을 걸레로 닦아내다가
새똥에 섞인 까뭇까뭇한,
작디작은 풀씨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멧새들의 몸을 빠져나온 그것들은
어느 골짜기에서 살다가 멧새들의 몸 속에 들어갔을꼬,
나는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골짜기에서
이 누옥까지의 거리를 또 생각해보았다
내일도 모레도 내가 없으면
내가 없으면 이 처마 아래로 날아들어 잠을 청할
멧새들의 또랑또랑한 눈을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