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 김명인


이곳으로 이사 온 다음 날부터의 산책길이
거기까지만 이어졌다 끊어진 것은
가시 철망으로 둘러진 울타리 끝없어서
나의 산보 숲의 그 쯤에서 가로 막혔던 탓만이 아닙니다

철책 앞에 멈추어 설 때마다
그 너머 무성한 숲의 비밀 그다지 알고 싶지 않다고
못내 궁금함을 떨치고 돌아서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너무 많은 질문 혼자서 새겼으므로
이 오솔길 어디만큼 이어졌다 끝나는 지
울타리 너머 누가 사는 지
울창한 그늘에 가려 짐작이 안 되는대로
널판자 엮어 세운 쪽문 틈새 가끔씩 엿보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만발했던 들꽃들이 경계 이쪽으로도
떨기 흩어 놓아 그 꽃철 다 가기까지
마음 홀로 얼마나 자주 울타릴 넘나 들었는 지요

하루는 장대비 속인데 비옷도 안 걸친 사내가
흠뻑 젖은 등을 보이며 쪽문을 못질하고 있어서
누구도 더는 넘볼 수 없게 하려는가
참을 수 없도록 말 건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설 순간의 그가 두려워져
땀과 비로 얼룩졌을 그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도 그 쯤에서 내 산책길 가로 막았던 것은
단단한 경계인 쇠가시 울타리가 아니라
이쪽으로도 드리워지던 떨기 꽃그늘이거나
한동안 지울 수 없던 그 사내 완강한 뒷 모습일 거라고

만발하던 울타리 너머의 꽃들 해마다 지고
우레를 끌고 가며 염소 울음처럼
오래 질척거리며 한철 우기도 잦아 들었지만
더는 이어지지 않는 산책길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가 나도 울타리 너머로 끝없이
따라 걷고 있을 거라고

아직도 흐느낌처럼 그때의 떨림 남아 있어서
울타리 저쪽 숲의 주인이 누구인 지
궁금해 질 때마다 마음 갈피 더는 어둡지 않게
등불 환하게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