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가을"

    딸 셋 아들 셋을 둔 여자는
    봄마다 참깨 씨를
    앞가슴 같은 텃밭에 자식처럼 뿌렸다.
    오뉴월 볕 살에 찔려 익어 가는 푸른 별들
    여름 시작부터 가을 설핏 해 질 무렵까지
    참깨 털이는
    동 서로 뜀박질하듯 툭툭 터져 나갔다
    추수 끝나 비틀어진 깻단 들을
    양지바른 툇마루에 올곧게 세워 말려
    곳간에 祖王神 (조왕신)섬기듯 고이 모셨다.
    자식들 대처로 유학 가는 날 아침이면
    까만 젖꼭지처럼 마른 꼬투리 깻단을
    燒紙(소지)처럼 사뤄 지은 밥을 먹여 보낸 후
    왼 종일 두 손의 지문 지우며 애간장을 태웠다.
    더운 밥상가에 모여 앉은 식솔들
    피어오르는 뽀얀 김이 목젖을 삼키는 동안
    아랫목에 묻어 두었던 여인의 간절함
    탯줄에 묶여 애틋한 불씨로 피어올랐다
    무르익은 깨 알맹이 밥숟갈 끝에서 일렁일 때
    흰 머리칼 날리는 쓸쓸한 눈가에
    배추나비 떼지어 날아 올랐다
    가슴에 精恨(정한)으로 돋은 별
    여든 평생 장지문 쪽으로 귀 세워 노루잠 자고
    휘어진 등뼈 마디마디 깨꽃이 하얗게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