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바람은 바람 속으로 불고
강물은 깊어지며 흐르리라
나무의 흉터 자국마다 눈물의 싹
그날의 저녁은 평온했다
한때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습한 어둠의 동굴을 지날지라도
바람은 속삭임으로 달래주었다
저녁의 거리에 나뒹구는 추억의 껍질들
어제는 버렸던 것들
어제는 지워졌던 사람들
누군가의 사이를 걷고
또 누군가의 어깨를 지나며 슬펐다

바람이 한쪽으로 몰려가고
밤이 깊을수록 밝아져 오는 등불
등 뒤로 켜지는 어제의 불빛들
누군가를 지우려 했던 것은 슬픔이었다
누군가를 보내려 했던 것은 아픔이었다

별이 진 언덕 너머
추억의 날개들이 무너지는 상아 무덤
빛바랜 시간을 밟고
이승의 어느 들녘을 지나는
휘청거리는 걸음마다 어둠이 차인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숲
고요 속을 자맥질하는 시간의 말발굽 소리

글 / 切苾 김준태

♪ 세월 - 낭송 고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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