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리꽃

재울 수만 있다면
노랗게 부황이 든
몽롱한 기억의 숲에서
물에 젖은 뼈 하나 건져낼 수 있다면

풀잎 사이로
모가지를 길게 내밀고
노란 혓바닥 화분을 뚝뚝 흘리며
나비를 꿈꾸어도
파랗게 소름 돋은 핏대
너의 목숨에 미쳐도 좋으련만
흉터가 자라 눈에 가시가 솟구칠 때
더 달콤한 꽃으로 나를 눕혀다오
나를 재워다오

황달의 눈 늘어뜨리고
죽은 사랑 노래만 읊조리는 것이냐
달콤한 환각이라면
꽃잎부터 속살까지 온몸 우려낸 널
한 첩 약물이게 하고
너의 심장까지 꽃이게 하고 싶다
이승의 날보다 고요한
상한 폐부 깊숙이 와서 잠시라도
날 죽음이게 해다오

글/切苾 김준태

♪ 원추리꽃 - 낭송 고은하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