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엄마와 어린 딸

살아서나 죽어서나
계절의 빛깔로도 이름할 수 없는 비정한
당신의 성씨만 닮은 단풍이 어제도
오늘도 그림자처럼 너무 많이 떨어집니다

정말이에요, 결혼만 하면 수없이 아파해온
생의 이력과 가을 불치병이
찜질하듯 씻은 듯이 치유될 줄 알았어요
남겨둔 당신의 어린 딸을 안으면서도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던 사실이
가을이면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끌고 갑니다

엄마!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얘야! 노랑 빨강 나뭇잎이
모두 하나같이 너를 닮아서 이야기하는 거야
그래도 나랑 이야기해줘, 꼬옥 안아주고 응?

그 흔한 계절의 추억 한마디 없이
등 돌리며 살아온 세월, 비명처럼
가을이 지나간다 하여도 없었던 사랑을
어설픈 미소로 대답하진 않겠습니다
바람은 낙엽만 쓸어담는 것이 아니라
전신의 뼈마디까지 흔들고 있으니까요

엄마!
저 낙엽이 모두 좋아하는 친구 이름이나
맛있는 과자였음 좋겠어!
그래, 그렇구나! 너는 만날수록 먹을수록
더욱 예쁘지만 엄마는 자꾸 아프단다

당신의 기억을 아무리 지우고 떠나도
가을은 여전히 오는군요
회오리치는 단풍처럼

글/이종인

♪ 가을 엄마와 어린 딸 - 낭송 고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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