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 [表忠寺]



호우주의보속의 밀양행.내 머릿속의 기억으로는 28년만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삼랑진에서 기차를 내려 버스를 타면,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강변과 팔짱끼고,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산사를 가던 28년전 유년의 추억속의 표충사....
도로사정과 풍경들이 예전과 비교 할 수 없이 변화됐지만 그래도 나그네에게는 그 시절의 모든것들이 박제된체
그 자리에서 반겨줬으면 하는 기대이지만 세상이 그대로 놔 둘리 없겠지요.   
각설하고....

천년 역사를 가진 표충사는 밀양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재약산(천황산)의 남서쪽 기슭에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라고 했고,그 뒤 신라 흥덕왕 4년(829년)에 황면선사가 재건하여 영정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그 뒤에 다시 폐사 되었는데 1839년 헌종 5년에 관자리에 사당 3칸을 신축하여 무안면 표충사에 있던 
청허, 사명, 기허대사의 진영 (眞影)과 위패를 옮겨와 절 이름을 <표충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답니다 
이 절은 국보 제75호인 표충사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琓),보물 제467호인 3층 석탑 
그리고 사명대사 유물 200여점의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합니다.
또한 절 주변에는 층층폭포, 금강폭포, 얼음골이 있고 산마루에는 억새풀로 유명한 사자평 초원이 있습니다



표충사 진입도로


수충루 전경


표충사당


설법전


표충사 유물 전시관인 박물관 전경입니다.
비오는 날이라 관람객이 없어 문이 굳게 잠겨서 들어가지 못한게 유감이었습니다


사천왕문 전경입니다


만일루는 H자형으로 된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로서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평의 부지에 
불교의 48원(願)을 상징하는 48칸의 선실(禪室)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무량수각(無量壽閣) 또는 서래각(西來閣)으로 편액되어 선방(禪房)으로 사용되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대종사(曉峰大宗師)가 
말년(末年)을 보내다가 1963년 열반한 곳이기도 합니다


표충사 대홍원전(大弘願殿) 앞에 세워진 3층석탑. 
탑 앞에는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있으나 이 곳은 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합니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전하는데 
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였고, 가람배치도 큰 이동이 있었을 것이니 
이 탑도 그 때에 옮겨진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기단(基壇)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고
탑신부(塔身部)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으며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식은 없으며 
2층 몸돌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3층도 체감되어 있다. 
또한 2·3층의 몸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으나 너비는 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좁아진것 같으며 
지붕돌은 밑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고,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얹혀져 있으나 정돈되지는 못하고
그 위에 1m 가량의 끝이 뾰족한 쇠막대를 세웠는데 탑신부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커다란 단점이 있으나, 
기단이 1단으로 구성된 신라 석탑양식을 따른 아담한 탑으로 보이며,탑의 머리장식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것 같았습니다.


표충서원


대광전


범종루


우화루

우화루에 앉아서 비오는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았습니다


팔상전


산영각, 독성전


관음전


명부전


경내의 영각


칠성각에서 바라본 경내의 전각들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대광전


비에 젖은 산사의 전각들...


대광전과 삼층석탑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수충루


삼층석탑


고즈넉하다 못해 쓸쓸한 산사의 비오는 풍경들...















나그네는 흔적으로 말한다
넘쳐서 통곡하고 모자라서 탄식하던
그 여름의 질곡
여로의 끝, 안식의 저편에서
풍요의 만선을 기다린다
너희가 알기나 하냐
나그네가 바다가 되기까지
넓은 가슴으로 애무하며
긴 기다림의 세월을 엮어
기워갚고야 말 은혜를 생각하는 비의 마음을 


- 박창기의 "비는 나그네"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