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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네거리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종로통은 가히 서울의 동서(東西)를 가로지르는 동맥이라 할 수 있다.
먼 옛날의 파발마(擺撥馬)의 말발굽 소리는 차치하고라도 목이 쉰 전차의 경적소리가 지금도 들릴 것만 같은 거리, 이 거리가 바로 종로통이다.

이 거리에 개화의 물결이 지나가면서 지금과 같은 근대적 다방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27년경이다.
영화감독 이경손(李慶孫)이 관훈동(寬勳洞) 입구에 낸 「카카듀」란 다방을 필두로
영화배우 복혜숙(卜惠淑)이 인사동 입구에서 「비너스」를,
디자이너 김용규(金龍圭)가 「맥시코」를,
시인 이상(李箱)이 종로1가에서 「제비」를 열어 종로거리 다방의 막이 올랐다.

당시에 일본인들은 주로 명동(明洞) 충무로(忠武路)에서 다방을 개업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남촌(시청앞)과 종로에서 개업하여 경성(京城) 다방거리의 양대산맥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종로거리는 보수적 기질이 강한 상업지역으로의 특징을 광복 후까지 지켜 내려왔다.
물론 명동과 마찬가지로 문화다방에서 상업다방으로의 시대적인 변천은 필연적인 것이어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종로거리 구석구석에 지금과 같은 근대적 다방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명동과 마찬가지로 격변기에는 문화예술의 집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즉 차를 마시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넘어 갖가지 문화행사와 각급단체의 모임이 열려 종로거리를 살아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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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광복에서 1960년에 이르는 시대에 종로와 그 일원의 유명했던 다방과 그 곳에서 열린 문화행사를 정리된 자료를 통하여 종로 거리에서 다방이 지닌 의미를 찾고자 한다.

· 경성다방(종) 박종화(朴鍾和)의 『청자부(靑磁賦)』 출판기념회 오상순(吳相淳) · 양주동(梁柱東) · 김영랑(金永郞) · 김광섭(金珖燮) · 서정주(徐廷柱) · 박두진(朴斗鎭) · 조지훈(趙芝薰) 외 20명 발기(發起)
· 한가람다방(무교) 주요섭(朱耀燮)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출판기념회 염상섭(廉想涉) · 이은상(李殷相) · 서항석(徐恒錫) · 이무영(李無影) · 박철 · 계용묵(桂鎔默) · 피천득(皮千得) · 윤영춘 · 최영수 등의 발기 작곡가 정종길(鄭鍾吉) 가극(歌劇) 「춘향전」기념축하회 서항석 외 8인 발기
· 부라질다방(서린) 이능우(李能雨)의 『국문학개론』의 출판 기념회 정운삼(鄭雲三)시인의 추도회 한국사진회의 작품월례회
· 예원(藝苑)다방(종2) 「대한출판문화협회」총회
· 시온다방(종2) 전국문화단체훈련학회(全國文化團體訓鍊學會) 주최 「 UN총회대표 공로위로회」개최 김경수목사의 시집 『꽃과 바다』출판기념회 시인 임인수(林仁洙)의 『땅에 쓴 글씨』출판기념회
· 양지(陽地)다방(종2) 법대동창친목회 외 3회 · 비각(碑閣)다방(세종로) 연정(延政)의 밤 외 6회
· 호생(互生)다방(세종로) 연정의 밤 외 2회
· 월계(月桂)다방(세종) 박승훈의 『발발발』출판기념회 겸 도미환송회
· 귀공자다방(광교) 화가 김환기(金煥基) 귀국환영회 [註67] 시인 백시상(白時像)의 시집 『구슬에게 바람에게』출판기념회
· 가고파 다방(무교) 여류동양화가 금동원의 「합죽선(合竹扇) 선화전(扇畵展)」

이외에도 「아세아다방」「남궁(南宮)다방」「신사다방」「탱고다방」「복지다방」「국제다방」「서라벌다방」「양양(洋洋)다방 」「내내(來來)다방」「제일(第一)다방」「공작다방」「단성사다방」「춘몽(春夢)다방」등이 종로거리에서 유명하였고 「YMCA그릴」「영보그릴」「서울그릴」「호수그릴」「대한공륜(大韓公倫)지하그릴」등에서도 모임과 행사가 많았다.
그리고 동숭동의 서울대학교 문리대 앞에 있던 「별장(別莊)」의 분위기를 살린 「학림다방(學林茶房)」 이 개업하여 1960년대에 들어와서 유명해진다.

[ 출처 : "서울육백년사"에 있는 글을 제목과 내용을 읽기 편하게 약간 변형하여 올렸습니다 ; 그림;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