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많이 불렀던 ‘푸른잔디’란 노래 이지요.

고향에 살면서도 풀내음이 풍기는 노래를 특히나 좋아했어요.

우리 어렸을 적엔 딱 저랬습니다.

서산에 노을이 질 때면 소 먹이러 갔던 아이들이 소를 앞세워 길게 줄을 지어 돌아오지요.

오후 내내 함께 했던 소와 아이들은 해거름 길을 따라 돌아오며 하루 일과를 함께 접습니다.

 

 

서산 너머로 긴 하루해가 지기 시작하면 줄을 지어 산을 내려옵니다.

오는 길에 못에서 물을 먹이고는 저녁 짓는 연기가 자욱한 동네로 돌아오는데

그 행렬이 참 그림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소 끈을 받아 단단히 잘 매어 두십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비육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농사일을 돕는 농우(農牛)를 키웠었지요.

사료를 먹이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풀을 베다 먹이고,

겨울에는 여름 내내 베어서 말린 건초와 벼짚을 썰어서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였습니다.

 

그래서 풀을 모으는 일은 집집마다 한 일거리가 되지요.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하루에 한두 번은 풀을 베러 갔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꼴머슴이란 이름의 머슴도 있었지요. 그러니까 풀베기를 전담하는 어린머슴이었지요.

 

  

그 시간까지는 여자 아이들은 땅 따먹기나 공기놀이를 하고,

그것이 싫으면 가지고 간 책을 나무 그늘에 앉아 읽기도 합니다.

신기한 것이 소들도 길을 알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모두 한 자리에 모이곤 했지요.

소들끼리도 친한 사이가 있습니다. 늘 같이 짝을 지어 풀을 뜯고 같이 다니는 소가 있는가 하면,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사이도 있고 그랬습니다.

싸움이라도 붙으면 떼느라 생고생을 하지요.

 

그래서 산에는 암소들만 데리고 가지, 수소는 절대로 데리고 가질 않습니다.

싸움질만 하고 암소들을 괴롭히니 평화를 위해서 수소는 집에 그냥 묶어 둡니다.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수소는 너무 거칠고 위험한 것이 첫번째 이유이겠지요.

  

밀짚을 땔감으로 때면 그 연기 냄새가 참 좋습니다.

마디가 있어 타는 소리도 따닥 따닥 경쾌하게 나지요.

 

하늘에 이른 별이 하나 둘 돋을 때면 모깃불을 피워 놓고 마루에 둘러앉아 먹던 저녁 밥, 참 꿀맛이었지요.

우리 집은 할머니 상 따로, 아버지와 막내 동생이 겸상을 하고 딸들은 둥근 판에 둘러 앉아 같이 먹곤 했지요.

지금도 여름 노을만 보면 소 몰고 돌아오던 아이들의 긴 행렬이 생각납니다.

 

 

 

풀을 베다가 마당 가득 말리느라면 건초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다 마르면 아버지께서 잘 묶어 한 곳에다 차곡차곡 쟁여 놓으시지요.

겨우내 볏짚과 함께 썰어 소에게 줄 양식입니다.

 

저도 풀 베는 일은 자주 했습니다.

문제는 일이 서툴러 낫만 들고 나갔다 하면 반은 다쳐서 오기 일쑤였습니다.

그 흔적들이 지금도 왼손가락에 수도 없이 남아 있습니다.

 

친구 몇 명씩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는 친구들이 제 망태기에다 풀을 대신 채워 주곤 했습니다. ^^*

 

 

 

 

 

특히나 여름 방학 때는 소와 관련된 추억이 많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놀다가 세시쯤 되면 일어나서 각자 소를 몰로 나옵니다.

가까운 산도 있지만 우리 동네는 소를 먹이러 꽤나 멀리 갔습니다.

가까운 곳은 그때만 해도 야산 개발을 많이 해서 밭이 많다 보니

툭하면 소가 남의 밭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나곤 하지요.

그래서 멀찍이 가는 바람에 동네 아이들이 모두 같이 가고, 같이 돌아오곤 했지요.

 

산 기슭에서 소 뿔에다 끈을 감은 뒤 소를 방목하고는 해질녘 쯤에 산 꼭대기에 소와 아이들이 다 모입니다.

 

 

 

 

 

그래도 그 때 지금에서 돌아보니 행복했다.....

 

눈물 나도록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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