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의 판자촌 이야기




이작은 판자집에 4~5명이상의 자녀와 한방에서 지내며 살았답니다.





이러한 판자촌에 살면서도 부모님은 자식을 적어도
고등학교이상 보내셨습니다.





좁은 골목이지만 사람들이 많아 항상 분주한 생활이였죠.





맑은물이 흐르는 냇가 그리고 판자촌 그래도 어른을 공경하며
착한이들이 살았답니다.





바람에 지붕이 날려갈까봐 돌을 올려놓고 어려운 삶이였지만
정이흐르는 삶이였기에 정이메말라있는 지금의 현실보다
그들은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행복은 가난에서 더 많은가 봅니다.
이웃끼리 나누어먹고 도와가며 서로공경하고
예의가 있고 더 순박하며 웃음도 더 많았다고 하네요..





조그마한 도랑같은 냇가..
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물은 빨래할만큼 깨끗했고
도로포장이 된곳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추억을 가슴에 심으며 자랐답니다





청계천에 있던 판자집의 활빈교회 비록 남루했던 교회이지만 활기가 넘쳤고
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다녀가신 조그마한 교회 가난한 목사였지만
마음은 예수님 같았답니다.





한양대학교 주변





한양대부근 저 멀리보이는 다리가 살곶이 다리입니다.
지금도 부모노릇하기 참으로 힘드시죠?
저시대에는 얼마나 더 힘들게 여러분들을 키웠을까요..
어른들을 모시면서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신 우리들의 부모님..
살아계신다면 최선을 다해야 되겠죠..ㅎ




그리운 얼굴 / 유익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