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무협지


하룻밤에 열 권… '速讀神功'을 배운 책

1961년에 가장 많이 읽힌 소설은 최인훈의 '광장'과 무협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김광주의 '정협지'였다. 그 해 늦은 봄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역사의 방향과 개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두 불안하고 막연하던 시절이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자유를 찾아 북한과 남한을 거쳐 제3국을 찾아 나섰다면, '정협지' 독자들은 강호의 고수들이 펼치는 절대무공의 세계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1961년 6월 15일부터 1963년 11월 24일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된 '정협지'는 대만 작가 웨이츠원(尉遲文)의 '검해고홍'(劍海孤鴻)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져와 사실상 새롭게 쓰다시피 한 작품이다. 회양방과 숭양파라는 두 무림방파의 대립을 배경으로 절대무공을 연마한 노영탄, 악중악 형제와 절세가인 연자심, 감욱형이 펼치는 사랑과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중국 남경의대(南京醫大)에서 공부한 김광주는 소설가와 정치가의 길을 동시에 꿈꾸었던 이다.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의 측근으로 활동하다가 광복 후 함께 귀국했고, 1933년에 '신동아'에 '밤이 깊어 갈 때'를 발표한 적 있는 소설가였다. 말년에는 암으로 투병하면서 무협소설을 구술하면 아들이 받아 적기도 했다. "내가 받아 쓴 걸 읽어 드리면, '거기 점 찍어. 거기 줄 바꿔' 이러셨지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어요. 그때 나한텐 문장수업이 좀 됐을 겁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구술하는 무협소설을 받아 적던 아들은 훗날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다. 다름 아닌 소설가 김훈이다.
무협소설은 1960년대 후반부터 대본소(도서대여점)를 통해 유통된다. 이 시기 남자아이들에게 대본소의 무협지는 일종의 문화적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대본소에서 책 빌려보던 1970년대 초반을 시인 하재봉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내가 처음 빌려서 읽기 시작한 책은, 당시 한창 붐이 일어났던 무협지였다. 김광주 선생의 '정협지', '비호', 이런 무협지들과 중국무협지들을 번역한 시리즈물을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무협지가 나에게 가져다준 유일한 소득이 있다면 독서 속도를 엄청나게 빠르게 해주었다는 것이다."('시인의 마을')

무협소설을 읽는 독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무공이 있었으니, 하루에 열 권 넘게도 훌쩍 읽어낸다는 '속독신공'(速讀神功)이 그것이다. 그 속독신공을 가능케 한 무협지의 매력을 조용헌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누구나 천하를 한 번 돌아다니고 싶은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주인공이 명산과 대천을 여행하면서 별의별 진기한 풍광들을 접하고, 여러 문파의 고수들과 마주치는 장면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주유천하 욕구를 대리만족하는 것이다." ('조용헌 살롱')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야상곡 (夜想曲) Vocal by 김동욱 (자하랑 version)

출처 : 조선일보 200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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