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엽서 - 대한민국 60년] 구호물자


'깡통 분유' '악수표 밀가루'의 추억

"전쟁 뒤 구호물자로 우유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유와 물엿을 섞어 만든 비가가 나오자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 군것질을 지배했다." 답사여행 때 반드시 밀크캐러멜을 챙겨 먹는다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회고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미국이 우리나라에 제공한 구호물자의 역사는 광복 직후 점령지 행정구호 원조로 시작됐다. 6·25전쟁 기간과 그 이후로는 한국민간구호계획(CRIK), 유엔한국재건단(UNKRA), 국제협조처(ICA), 공법(PL)480 등에 따른 원조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 우리나라가 받은 원조는 24억 달러가 넘었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공법480에 따라 1956년부터 우리나라에 제공된 구호물자다. 정식명칭은 미국 공법480호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인데, 미국의 농산물 가격 유지와 저개발국 식량부족 완화를 위해 잉여농산물을 각국에 제공할 수 있게 한 법이다.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는 데는 밀가루가 최고였으니 '480 밀가루', '악수표 밀가루' 등으로 수제비 만들어 먹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수제비는 별식이 아니라 배고픔의 상징이다.
'악수표 밀가루'란 또 무엇인가? 공법480에 따라 제공된 구호물자 밀가루 포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아래 악수하는 두 손이 인쇄돼 있었다. 종이가 귀했던 그 시절 그 포대를 찢어 교과서 표지를 싼 학생들도 많았다. 밀가루 외에 옥수수가루와 분유도 구호물자로 많이 제공되었고 이에 따라 옥수수가루로 만든 죽이나 빵도 배고픔을 달래는 데 요긴했다. 학교 급식 빵도 구호물자 옥수수가루가 주 재료였고, 구호물자 간유를 학교에서 먹었다는 이들도 많다.

성석제 소설 '아름다운 날들'에 따르면 성당과 구호물자의 관계도 각별했다. 선진국 종교기관에서 보내준 구호물자도 많았던 것. "그 무렵 눈이 파란 신부님이 태어난 나라 사람들이 안 쓰고 못 쓰는 물건들을 모아서 성당으로 보내주었답니다. 그걸 구호물자라고 했지요.…성당에 가면 버터 깡통도 주고 깡통 초콜릿도 주고 분유 깡통도 주었으며 깡통 사탕도 나눠주었습니다."

공법480에 따른 구호물자 지원은 1981년에 종료되었고, 우리나라는 해외에 구호물자를 보내줄 수 있는 형편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가 2005년에 지적한 다음 사항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우리가 원조 받은 액수는 총 130억 달러 정도이고, 지금까지 원조한 총액은 약 22억 달러다. 갚아야 할 은혜의 빚이 이렇게 많은데도 우리는 국민 총소득의 0.06퍼센트, 1인당 한 달에 4백 원 정도를 원조금으로 내고 있다.…한국의 위상과 국력에 걸맞으려면 최소한 0.1퍼센트로는 올려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김동률 - 희망

출처 : 조선일보 200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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