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물감이 풀리는 계절, 메마른 가지에 안개 같은 연둣빛이 풀리는 그러한 계절이다. 5월의 수하(樹下-나무 아래)에 서면 인간이 초라해진다. 생기에 넘치는, 질서가 정연한, 그리고 화평한 수목(樹木)의 생태가 우리들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시인 워즈워드는 노래했지, 5월의 하늘 아래서 사람들은 나무에게 배울 바가 적지 않다.

   시정의 직업인들은 날마다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날 때 생명의 환희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오로지 주말의 여가를 즐기기 위해 평일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가의 장은 어두운 지붕 밑이 아닌, 소음과 먼지로 가득 찬 거리가 아닌, 드넓고 푸른 자연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자연이 ‘남아 있는’ 곳은 산과 절뿐이다.

   그래서 요즘 도시 근교에 있는 사원은 주말의 소풍객으로 인해서 만장의 성황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소풍객이 들끓는 절간이나 그 주변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또 그들이 지나간 뒤의 잔해는 ‘마라푼다’ 때들이 지나간 자취를 연상시킨다. 수도와 포교의 도량이 언제부터 이처럼 황량해졌는지 알 수 없다.

   최근 어떤 사원의 종무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오늘도 소풍객 때문에 예정된 일과를 마치지 못했다. 시비를 가리다가는 또 싸웠을 것이다. 모른 체하자니 절 꼴이 아니다. 성인들이 떠들다 간 자리에는 깨어진 술병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중고등학생들이 놀고 간 숲에는 도시락 껍데기와 신문지 조각으로 쓰레기 밭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꼬마들이 쉬고 간 법당 뒤에서는 때아닌 연기가 피어올랐다. 급히 달려가 봤더니, 선생님 한 분과 꼬마들 대여섯이 버려진 휴지들을 주워다 태우고 있었다. (하략)”

   주말의 신심은 곧 그 사회의 발가벗은 민심이다. 잘사는 나라에 비하면 20분의 1도 못 된다는 국민소득, 그것은 비단 물량면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 것 같다.

1969. 5. 4.
글출처 : 영혼의 母音(법정스님, 샘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