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정월 보름날로 90일 간의 겨울철 안거(安居)가 끝났다. 이곳 불일암에 와서 여덟 번째로 지낸 겨울 안거다. 78년 벙어리가 된 채 묵언(黙言)으로 지내던 그 겨울과 지난겨울이 내게는 고마운 시절로 여겨진다. 지금껏 수많은 안거를 치렀지만 그때마다 의미와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마련한 자기 질서를 순일하게 지속시키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안거제도는 2천5백년여 년 전, 불타 석가모니가 생존하던 초기 승단에서부터 시작된 승가의 전통적인 엄격한 생활 규범이다. 그 시절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혹은 5월 15일)부터 석 달 동안 우기(雨期)에는 한곳에 정착했다. 밖으로 나다니게 되면 본의 아니게 풀이나 벌레를 밟아 죽이게 되므로, 동굴이나 절에 들어앉아 수도에만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 또는 줄여서 안거라고 불렀다. 비가 내리는 우기에 행해지는 반성과 학습이다. 그 나머지 기간은 편력(遍歷)을 하면서 수행과 교화활동을 한다.

    따라서 출가 수행자들은 육신의 나이는 세지 않고, 이 안거를 마치게 되면 자연 법의 나이 혹은 승(僧)의 나이가 하나씩 보태진다. 기후조건이 다른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겨울철이 춥기 때문에 음력 10월 15일부터 석 달 동안 산문(山門) 밖에 나다니지 않고 절 안에서만 정지니 수도한다. 가톨릭 용어를 빌면 90일의 피정(避靜) 기간인 셈이다.

    여름 안거에는 무덥고 개방적인 계절이라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뭇잎이 지고 시냇물소리도 숨을 죽인 겨울철은 비교적 집중하기가 쉽다. 낙엽이 다 지고 훤칠한 줄기와 빈 가지만 허공에 뻗어 있을 때 그것은 본질만 남은 나무의 본래 모습, 사람도 떨쳐버릴 것을 다 떨쳐버리고 나면 본래의 자기 모습만 남는다. 본래의 자기로 돌아올 때 나무도 사람도 다 같이 단순하고 순수해진다. 이런 단순과 순수 속에서 자기응시를 통해 새로운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린다. 거듭거듭 새롭게 탄생한다.

    출가 수행자에게 이 같은 자기응시의 기간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둘레의 흐름에 물들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 안거기간을 승가에서는 무엇보다도 고맙고 귀하게 여긴다.

    지난겨울 나는 석창포와 수선(水仙)과 난(蘭)과 석곡(石斛)과 함께 지냈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석창포는 3년 전부터 겨울마다 한방에서 눈길을 마주 보내며 살아온 정든 사이다. 요 며칠 동안 매화우(梅花雨)가 내리어 가지마다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고 봄새들이 다시 찾아와 노래하게 됐으니 석창포도 골짜기가 그리워질 그런 계절이다. 오늘 낮 그 고향집에 데려다주었다. 돌아서면서 자꾸만 뒤돌아본 것은, 이제 우리는 다시 마날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석란(石蘭)리라고도 부르는 석곡은 서울의 박 화백이 지난 해 늦가을 인편에 이런 사연과 함께 보내온 것이다.

    ‘공해 속에 시달리다 스님 방으로 출가하는 석곡이 무척 좋아라 합니다. 저는 난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요. 식물도 사람의 마음과 똑같이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석곡의 상태를 편지 끝에 열거해 보내주었다.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의 밝은 창가에서 진초록 무성한 잎에 싸여 겨우내 꽃을 피웠다. 보는 사람의 마음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안거가 끝나는 해제(解制)날 마침 덕스러운 한 어머니가 왔기에 선뜻 안겨 보냈다. 나는 한동안 암자를 비우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테니 그를 맡아 길러줄 보모가 필요해서였다.

    양력 설날 광주에 사는 재희네 엄마가 절ㄹ에 오면서 꽃망울이 부풀어 오른 난초분을 하나 가지고 왔다. 다래헌 시절 난초를 시중드느라고 마음깨나 썼던 경험자로서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꽃을 보면서 향기를 들으라고 일부러 멀리서 가져온 그 향기로운 마음이 고마워 혼연히 맞아들였다. 우리 방에 시집온 지 여드레 만에 꽃은 은은한 향기를 풍기면서 문을 열었다. 초승달처럼 가녀린 꽃을 대할 때마다 내 마음에서도 조심스럽게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난초꽃은 달이 바뀌어도 이울지 않고 피어 있었다. 곁에 어린애를 두고 사는 그런 느낌이었다. 해제날 그 난도 안거를 마치고 다시 옛집으로 돌아갔다.

    수선(水仙)은 의대생인 상순이가 제주도에 갔다가 친구 집에서 얻어온 것. 그는 엉뚱한 짓을 잘한다. 한번은 장미꽃을 한 아름 소포로 부쳐와 나한테 야단맞은 일도 있다. 살아 있는 꽃을 소포로 보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생명을 지닌 꽃을 왜 그토록 학대하느냐고, 화란이나 영국 같은 나라라면 또 모르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우편제도가 아직도 엉성한 곳에서는 꽃을 소포로 부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가져올 때 꽃망울이 맺힌 걸 화분에 옮겨 심고 날마다 한 차례씩 물을 주었다. 그의 이름이 물을 좋아하는 수선이니까. 꽃은 50일도 넘게 짙은 향기를 내뿜으면서 마냥 피어 있었다. 참으로 저력이 있는 기특한 꽃임을 이번에야 처음으로 알았다. 눈 속에 피는 꽃이라서 그런지 노래의 가사처럼 ‘붙일 곳 없는 정열을 가슴 깊이 감추고 찬바람에 쓸쓸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었다.

    나는 화분에 물을 줄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에서 휘파람으로 수선화의 노래를 불러주곤 했었다. 오늘 해질녘 마른 꽃대를 자르고 양지 바른 화단 한쪽에 묻어주었다.

    이제 겨울의 내 권속들을 모두 보낼 데로 보내고 나니 방안이 텅 비었다. 별리(別離)의 빈자리가 휑하다. 그러지만 이 빈 자리가 오히려 홀가분해서 좋다. 그 애들도 이 밤에 나를 생각할까? 저마다 돌아간 곳이 낯설지는 않겠지만 한겨울을 한방에서 살았으니 더러는 생각이 날 것이다. 식물도 사람의 마음과 같다고 했으니까.

    인연 따라 모였다가 그 인연이 다해 흩어진 우리. 이런 만남과 헤어짐을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되풀이하면서 살아오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가면 그립고 아쉬운 마음도 희미해질 것이다. 조금씩 철이 들면서 인생을 이야기하고 사랑과 이별을 꺼내고 또한 죽음을 말할 것이다.

    이 봄에 나는 또 길을 찾아 나서야겠다. 이곳에 옮겨와 살 만큼 살았으나 이제는 새로운 자리로 옮겨볼 생각이다. 수행승이 한곳에 오래 머물면 안일과 타성의 늪에 갇혀 시들게 된다. 다시 또 서투르게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영원한 아마추어로서 새 길을 가고 싶다.

    이 봄에 나는 다시 한 번 소유와 관계를 전지하고 정리할 것이다. 묵은 것을 버리지 않고는 새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미 알려진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내 자신만이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나는 보다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없는 듯이 살고 싶다. 이제는 정말이지 사람들을 덜 만나고 싶다.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지난겨울이 나에게 고마운 것은 이런 결단을 내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럼, 겨울이여 안녕!
(1983. 4)

글출처 : 산방한담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