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로 광주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영화를 하나 보았다. <파리, 텍사스>. 화면에서 낯익은 거리와 고속도로, 그리고 올스모빌 차가 보이자 눈이 번쩍 뜨였다. 거기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렌터카인데도 굳이 올수모빌만을 고집한다.

    지난 봄, 로스앤젤레스에 머무는 동안 나는 올스모빌을 몰고 다녔다. 해질녘이면 10번 싼타모니카 프리웨이(고속도로)를 서쪽으로 달려 말리부 비치에서 망망한 수편선 너머로 해가 지는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1번 도로를 따라 카멜을 거쳐 모로베이로 내려오는 태평양 연안의 아슬아슬한 해안선을 달리기도 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를 거쳐 유티 주와 네바다 주에 이르는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을 달릴 때의 그 허허로움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랜드케년에 갔을 때인데, 그대가 마침 부활절 휴가철이라 호텔도 모텔도 모두 만원이고 캠프장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무작정 길을 떠난 우리식 배짱의 차질이었다. 우리는 애리조나의 인디안 촌이 있는 카메론까지 잘 자리를 찾아 밤길을 재촉했다. 열이레 둥근 달이 아득하게 펼쳐진 사막을 교교히 비추고 있었다. 낙타 등이 아니라 차를 타고 달밤의 사막을 달릴 때, 시장기 같은 그 허허로움이 우리 일행의 입에서 말을 앗아갔다. 카메론의 모텔도 역시 만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사막의 밤을 차 안에서 새우처럼 꼬부리고 지새워야 했다. 영화에서 본 텍사스의 황량한 사막과 올스모빌이 내 기억의 심지에 불을 댕긴 것이다.

    미국에 가서 정식으로 운전을 배웠다. 운전학교 교사한테 하루에 한두 시간씩 열흘을 배워, 할리우드 차량국에서 시험을 치르고 면허를 받았다.

    송광사 LA 분원이 윌톤에 자리 잡고 있다. 2가와 3가 사이, 절 이름은 고려사. 전에 살던 스님들이 몰고 다니던 차는 있는데 운전할 사람이 없어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배운 운전이었다. 80년형 올스모빌.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중형차. <파리, 텍사스>에 나오는 바로 그런 차다.

    그곳에서는 운전의 요령이나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운전을 통해 예절과 사회질서를 익히도록 한다. 교차로에서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내닫는 그런 성급한 운전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새치기 하는 얌체 운전도 볼 수 없고, 서로 양보를 하면서 물 흐르듯 함께 흘러간다. 횡단보도가 아닌 데서도 보행자가 일단 차도에 내려서면 달리던 차도 멈추어야 한다. 보행자 우선, 보행자들은 전혀 서둘지 않고 자기 집 뜰이라도 거닐듯이 천천히 걸어간다. 우리네 관행이라면 빵빵거리고 무어라고 윽박지를 텐데 피차에 그런 내색조차 없다. 횡단보도에서 뛰듯이 급히 걸어가는 사람들은 물을 것도 없이 우리 동양인이라고 했다.

    물론 그 동네라고 해서 다 질서와 예절이 바른 건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교통법규가 가장 엄하고, 뉴욕이나 보스턴 등지에서는 우리처럼 난폭하고 무질서한 운전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어디서나 느긋이 기다리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았다. 우리처럼 매사에 조급히 서둘다가는 광활한 대륙에서 배겨낼 수 없을 것이다. 아무 먹잘 것도 없는(우리네 식성으로 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앞에서 줄을 서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그 인내력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는 친지들을 만날 때마다 미국에 온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대마다 나는, 이곳에 오니 우리나라가 훨씬 잘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는 살기 좋은 나라이고 희망적이란 말을 빼놓지 않았다. 이 말은 공연한 허풍이 아니라 그럴 만한 까닭이 있고, 머리고 따지기 전에 직관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인정이 있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아무 때고 마음만 내키면 얼마든지 친지들을 만날 수 있지만, 저들은 주말이 되어도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명절 때만 되면 거의 결사적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민족의 대이동을 보라. 우리는 아직 가난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잘 살아보겠다는 열의와 희망이 있다. 저 알래스카에서, 사우디와 중동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 한국인의 잠재력이 줄기차게 펼쳐지고 있는 그 생의 열기를 보라.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부유하게 살기 때문에 이제는 한고비 지나 느슨하게 즐기려는 경향이 짙다. 물건을 파는 가게나 은행, 혹은 관공서에 가보면 어찌나 꾸물대는지 우리네 입장에서 보면 화가 날 지경이다. 저쪽은 차디찬 질서만 있지 훈훈한 인정은 희박하다. 합리적인 사고에 젖은 나머지 비합리적인 정의 여백이 빈약하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엉성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댈 데가 있는데, 저쪽은 너무 밝게 드러나 이제는 기댈 곳이 없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사회 같지만 안으로는 옴짝 못하도록 구조적으로 얽매고 있다.

    처음 미국에 내렸을 때, 기가 죽으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저들이 너무 잘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 나라마다 생활환경과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고 삶의 양식이 같지 않기 때문에 수평적인 비교로써 삶의 가치를 따질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활을 어떻게 활용하고 극복하면서 우리들에 맞는 삶의 가치를 창조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을 돌이키니 움츠려졌던 어깨가 펴졌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고쳐야 할 점은 많다. 그중 하나가 매사에 너무 성급하고 조급하게 서두는 일이다. 좀 진득하게 기다리며 참을 줄을 모른다. 차곡차곡 쌓아나가지 않고 단번에 올라서려고 한다. 차분히 안으로 삭이지 않고 밖으로 드러내놓으려고만 한다. 성급하고 조급하기 때문에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을 가지고 속단한다. 이런 일들로 인해서 저지른 시행착오가 얼마나 많은가.

    과속은 무감각 상태를 가져온다. 그것은 맹목적인 행동과 같다. 너무 조급히 서둘다 보면 조그만 일에서 오는 삶의 잔잔한 기쁨과 고마움을 놓쳐버리기 쉽다. 등산의 기쁨은 산을 오르는 일에 못지않게 산을 이만치서 바라보는 이유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노사분규로 인해 큰 홍역을 치르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조급하고 성급한 경제성장의 부산물이다. 우리 분수와 치수를 망각하고 산업화를 성급하게 재촉한 결과, 수출 목표 얼마를 달성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상대적인 빈곤과 소외계층이 생긴 것, 사회의 불균형이 굳어지게 되면 심한 단층현상이 드러나고, GNP의 수치와는 상관이 없는 심각한 갈등이 폭발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런 단층현상이 마침내 일부에서 좌경화까지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싶다.

    로스앤젤레스의 다운타운(상업지역 중심가)에서 만난 한 거지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훤칠한 체격에 너덜너덜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어찌나 늠름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든지,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그를 지켜보았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어느 장군이 저렇듯 당당하고 의젓한 걸음을 걸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재벌이, 어떤 국회의원이 저렇듯 늠름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와 같은 늠름하고 당당한 기상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렇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에 연연하지도 않고 명예나 재물 그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이다. 미국에서 본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의 하나다.

    오늘 우리는 그 누구에게서도 그처럼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너나없이 모두가 졸장부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그 거지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그 어떤 욕망도 없기 때문에 온통 이 세상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의 왕이 되기에 마땅한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87 . 12>

글출처 : 텅 빈 충만(법정스님 : 샘터) 中에서.....
 

  
2010.06.04 (04:00:47)
[레벨:19]id: 제인
 
 
 

한발짝만 뒤로 물러나면

더 잘 보일텐데

멀리서 들여다본 내고향은 너무나 잘보입니다

안타깝기만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