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불일암의 사계>라는 사진집이 한 친지의 숙원으로 출간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사진집을 펼쳐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동안 몸담아 살던 보금자리가 마치 곤충이 벗어 버린 빈 껍질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다. 내 자신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낯선 풍경으로 보였던 것이다.

   내가 살 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한 후 뒷사람들에 의해 치다꺼리 되는 일들도 어떻게 보면 내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그들의 몫이고 차지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 이렇게 되면 이웃이나 뒷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자기 앞의 삶은 스스로 알아서 정리정돈하고 처리해서 뒤를 깨끗이 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꼬박 사흘을 자리보전하고 앓으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렸다. 나는 내 체력에 대해서 늘 고마워하며 잘 부려 왔는데, 이번에 추운 날씨에 과로를 좀 했더니 그만 눕게 되었다. 어찌나 기침을 해댔던지 오장육부에 멍이 들지 않았는가 싶다. 이러다가 일어나지 못하면 아주 가는 것이겠지. 하지만 죽을병이 아닌 한 앓을 만큼 앓아 주면 털고 일어날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체력 관리에 대해서 곧잘 아는 소리를 하면서도, 막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소홀하고 등한한 것이 저 마다 익혀 온 버릇일 것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72세 된 노인이 6·25전쟁 후부터 40년이 넘도록 한 트럭을 몰고 다닌다고 했다. 그는 그 차로 지금도 대관령에서 목장의 건초를 실어 나르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다루었기에 그처럼 오랫동안 같은 차를 굴릴 수 있었느냐고 그 비결을 묻자, 오르막길에서 엔진의 힘을 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듣고 나는 하나의 지혜를 터득했다. 이것이 어찌 차의 수명에만 해당될 이야기인가. 사람의 체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슨 일에 매달려 기진맥진하도록 골몰하게 되면 심신이 지쳐서 다음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체력을 한꺼번에 죄다 소모해 버리면 재충전이 불가능하다. 체력의 60~70퍼센트만 쓰면 이 다음 일에도 지장이 없게 될 것이다. 새겨 둘 지혜라고 여겼으면서도 우리는 번번이 체력을 탕진하여 그때마다 되돌아보게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도 고갯길을 올라갈 때 그 전처럼 가속 페달을 힘껏 밟지 않고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새로운 습관을 들이고 있다.

   일부러 자청할 일은 못 되지만, 평소 건강한 사람들도 어쩌다 한 번씩 앓는 일을 통해 삶의 여백이나 뒤뜰 같은 데에도 기웃거릴 수 있었으면 한다. 생과 사가 절연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처럼 서로 이어져 있는 엄연하고도 엄숙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앞에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갑자기 덮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난 7월 칠석날 나는 내 오두막의 개울가에서 겪은 일이 있다. 안팎으로 쓸고 닦으면서 청소를 한바탕 하고 났더니 온몸에 땀이 배어 나왔다. 개울가에 나가 훨훨 벗어 버리고 막 물에 들어가 씻으려는 참이었는데, 미끄러운 바위에 나동그라져 뒤통수를 깼다. 순식간에 얼굴이고 가슴이고 할 것없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것 봐라, 어떻게 하지?'

   순간 막막했지만 우선 피를 멎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를 줄줄 흘리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 악장에서 지혈제 마데카솔 분말을 꺼내어 상처를 더듬어 부었지만 피는 멎지 않았다.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뒤통수라 그 부위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두 병을 내리 부었더니 겨우 멎는 것 같았다. 조금 있으니까 주르륵 피가 다시 흘러내렸다. 마지막 남은 약을 마저 쏟아 붓고 반창고를 잇대어 붙여 놓았더니 지혈이 되었다.

   내 명이 짧았더라면 그날 나는 뇌진탕으로 소리 없이 이 세상을 하직할 뻔했다. 아하, 죽음이란 앞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갑자기 들이닥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한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따지다가 그만 두기로 작심을 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중이 대가리를 깨 가지고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창피하게 여겨졌고, 더 근본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데 병원을 찾게 되면 내 신분이 노출되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병원을 찾지 않았던 내 고집을 나는 지금까지도 잘한 일로 여기고 있다. 약을 사다가 더듬더듬 자가 치료를 한 결과 상처는 탈 없이 20일 남짓해서 아물었다.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즈네들 알아서 할 거라고 맡겨 두었다.

   어디서 살건 사람은 자기 식대로 살게 마련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신세를 덜 지면서 간소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이 맑은 공기와 물과 햇볕과 바람 등 자연으로부터 무상으로 입고 있는 은혜와 교훈을 같은 언어권에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얼마 전 산 아랫마을에서 내 눈으로 본 씁쓸한 일을 하나 이야기하려고 한다. 10년 가까이 남의 밭을 거저 부치면서 그 밭에서 감자와 배추와 당근 등 고랭지 채소로 적잖은 재미를 보아온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밭주인이 앞으로는 자기네가 그 밭을 쓸 계획을 알리자 그 사람은 자기가 돋아 놓은 흙 값을 내놓든지 아니면 그 흙을 파가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의 밭의 덕을 거저 입어온 사람이, 농사를 위해 흙을 얼마쯤 더 돋우어 놓았기로 그걸 파 가겠다니 이 어찌 온전한 사람의 도리인가. 밭주인은 하도 기가 막혀 흙을 파갈 테면 파가라고 했다. 그 사람은 흙을 파다가 자기네 밭에 부었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오늘의 농촌이 어쩌다 이토록 야박하고 박덕하게 전락되고 말았는가 통탄스러웠다. 흙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이 흙의 뜻을 저버리고서 어떻게 흙을 딛고 흙을 일구겠다는 것인가. 일찍이 우리 농촌에 이런 사람이 있었던가, 농업이 생명의 농업에서 벗어나 상업화될수록 이런 복 감할 일은 잇따를 것 같다.

   이번에는 흐뭇한 이야기 하나, 달포 전 나는 낯모르는 한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한 통 전해 받았다. 부산에서 사는 분인데 편지의 문면으로 보아 넉넉한 집안도 아닌 듯싶었다.

   "모든 사람들은 다 행복한데, 나만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만은 무척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입니다.

   스님 저도 보시라는 것에 동참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 뜻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1개월 전에 계를 하나 들어 오늘 탔습니다. 돈이란 보면 쓸 곳도 많지만 절약이 얼마나 좋은 건지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기분이 참 좋군요. 부처님과 약속이었고 저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게 되어 무척 즐겁습니다.

   저희 집 두 남매는 학교에서 공부는 하위권이지만, 세상을 살아갈 때 늘 꿋꿋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빌고 있습니다."

   내 책을 읽은 독자일 듯싶은데 나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어머니다. 함께 부쳐온 돈을 어디에 써 달라는 말도 없이 5백만 원짜리 수표를 보내온 것이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모임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써 달라고 기탁했다.

   세상은 이렇다. 한쪽은 흙의 은혜마저 저버린 탐욕스런 배은망덕의 손이 있는가 하면, 넉넉잖은 살림에 푼푼이 모은 돈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가슴을 여는 은혜의 손길이 있다.

   우리 이웃에 이런 손길이 있어 이 땅에 밝은 해가 오늘도 뜬다.
 
95. 1.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2016.04.16 (00:59:52)
[레벨:29]id: 하은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음이 푸근해지내요.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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